[체육계 폭력]‘가혹행위 온상’ 합숙소 실태는… 2013년 상시 합숙훈련 금지에도 초중고 380곳이 기숙사 운영 학생선수 5명중 1명 ‘합숙 생활’… 최숙현 부친 “딸, 생지옥이라 해”
문체부 “가해자 일벌백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최윤희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인권침해 관련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번이 체육 분야 악습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전화 너머로 들리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22)의 아버지 최모 씨는 7일 분노로 목소리가 가라앉질 않았다.
“감독이 부모를 오라고 하더라고. 감독이 ‘저거는 정신 차리려면 엄마가 때려야 한다’고 하면서 때리라고 했어요. 숙현이는 서러워 울고 애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고….”
○ “숙소 생활은 악몽”
최 씨는 “감독이 우리를 (숙소로) 오라고 했다. 숙현이가 도망갔다 왔으니 혼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죄인 아니겠나. (아내가) 가슴은 아프지만 세게 때리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6일 피해 사실을 증언한 고인의 룸메이트인 A 선수의 어머니 B 씨도 감독이 딸을 대신 혼내게 했다며 비슷한 정황을 전했다. B 씨는 “감독이 해외 훈련 가서 영상통화를 연결해 (딸을) 혼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들어와’라고 했다. 다른 선수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최 선수 등이 머물던 합숙소는 4층의 방 3개짜리 빌라로,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주장 선수와 최 선수, A 선수 등 3명이 합숙했다. 이곳에서 최 선수 등은 감독과 ‘팀 닥터’라고 불린 운동처방사, 주장 선수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운동처방사는 여성 선수들만 있는 공간에 밤늦게 찾아와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최 씨는 “딸이 숙소 생활이 악몽 같았다고 했다. 완전히 ‘왕따(따돌림)’ 분위기였다고 했다”고 말했다.
○ 법으로 막았지만 157곳 전원 합숙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합숙소 가혹행위를 막기 위해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을 제정했다. “상시 합숙 훈련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원거리 통학하는 학생선수를 위해 기숙사 운영은 가능하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2019년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교 313곳과 중학교 66곳, 초등학교 1곳 등 전국 초중고교 380곳이 여전히 기숙사를 운영한다. 157곳(41.3%)은 원거리 거주 학생이 아닌 근거리 학생까지 전원이 기숙 생활을 한다. 인권위는 전체 선수 4만7019명의 21.8%에 이르는 1만246명이 기숙사 또는 합숙소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태룡 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수석연구위원도 “합숙 훈련을 하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긴 쉽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폭언 폭행을 당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 훨씬 어렵다. 심지어 청소년기에 합숙하며 감독이나 동료하고만 소통하다 건강한 사회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