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중 3번은 대법원의 구성 다양화에 방점 대법원의 실질적 변화 이끌 후보 선택해야
정원수 사회부장
대법관추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자신의 후임에 대해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법원의 사정을 잘 아는 비중 있는 전임자 얘기여서 추천위원들이 귀담아듣게 된다”고 했다. 회의석상에서 선임대법관은 자격 요건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조인 이름을 거명하면서 적격과 부적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고 한다. 회의 막판에는 최종 후보군을 3∼5배수로 압축하는 과정에 투표권을 직접 행사한다.
이 때문인지 전임과 후임 사이에는 정통 법관, 고학생(苦學生) 신화, 여성 등으로 유사점이 적지 않은 경우가 많다. 권 대법관은 ‘민법의 대가’로 불린 양창수 전 대법관의 후임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보수와 진보 성향을 넘나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여부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다수의견이 아닌 소수의견에 섰다. 하지만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라는 판결 기준을 새로 제시했고, 태어난 아이의 ‘출생 등록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판결도 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김 대법원장은 2017년 11월(안철상 민유숙), 2018년 7월(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2018년 10월(김상환), 2020년 1월(노태악) 등 모두 4차례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다. 첫 번째는 비서울대와 여성 법관, 두 번째는 재야 변호사와 비서울대, 여성 법관, 네 번째는 비서울대 등이었다. 이른바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출신인 김상환 대법관의 세 번째 제청만 예외였다.
이번에도 원칙과 예외 중 선택해야 한다. 우선 권 대법관의 후임인 만큼 정통 법관이 차지해야 한다는 법원 내부 여론이 있고, 재판 능력이 검증된 후보들이 몇몇 눈에 띈다. 김 대법원장이 사석에서 “내가 아는 판사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 “김 대법원장에게만 사법부 개혁을 맡기지 말자”며 사법개혁의 새 주체를 자처한 진보 성향 법학자도 있다. 전체 법관의 30% 이상이 여성인 시대에 대법관 중의 여성 비율(23%)은 30% 미만이어서 여성 대법관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제청 직후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두고 선정했다”는 입장을 자주 밝혔다. 하지만 상징적인 다양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정함과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판결을 하는 대법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법원 안팎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올 9월 김 대법원장은 임기 반환점을 돈다. 공언했던 대로 이번에야말로 ‘좋은 (대법원) 재판’을 견인할 후보자를 선택해 대법원이 긍정적으로 바뀌길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