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2014년 집권 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진짜 과제는 경제난 해결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사태, 취약한 제조업 기반, 메뚜기 떼 창궐로 인한 흉작 등으로 올해 인도 경제가 1979년 이후 41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델리=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이달 3일 라다크를 찾은 모디 총리는 “팽창주의는 끝났다”며 말로는 중국에 엄포를 놨다. 현실적으로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중국에 맞설 카드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대중(對中) 경제 종속을 개선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2019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인도의 대중 무역적자는 487억 달러(약 58조4400억 원)였다. 사상 최고였던 2017년의 630억 달러 적자보다 나아졌는데도 약 60조 원을 밑졌다. 이 불균형은 전자제품, 중장비, 화학제품, 의약품 등 비싼 물품을 수입하고 농산물 등 싼 제품을 수출하는 구조에서 온다. 중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린다 해도 적자를 줄일 여지가 많지 않다. 역시 중국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미국 브라질 등은 대기업과 맞먹는 부농(富農)이 대부분이지만 인도 농가는 영세 소작농이 많아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하지만 복잡한 토지 매입 절차,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고용 관행, 28개 주마다 다른 조세 체계, 더딘 일처리, 악명 높은 관료주의와 부패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인도 특유의 취약한 인프라가 성장의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 포스코, 미국 월마트, 호주 BHP빌리턴 등 인도 진출을 시도했던 세계적 대기업이 줄줄이 포기를 선언한 이유다. 14억이란 거대한 내수시장은 매력적이나 일부 매장에서는 제품의 진열 및 판매 방식조차 고객의 카스트에 맞춰 응대해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계 3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국이 된 인도의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2%를 나타냈던 인도 성장률이 올해 ―4.5%에 그쳐 1979년 이후 41년 만에 역성장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 역시 아직 약 16%에 불과하고 실업률은 25%에 육박한다. 3월 말부터 이어진 석 달간의 코로나19 봉쇄, 4월부터 수도 델리 인근을 초토화시킨 메뚜기 떼의 공습 및 흉작 등으로 국민 불만 역시 하늘을 찌른다.
다급해진 모디는 5월 외자 유치 대신 내수 부양에 주력하겠다는 ‘자립 인도(Atmanirbhar Bharat)’ 캠페인을 들고 나왔다. 교역과 외자가 없어도 내수만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내수를 부양할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모디 정권은 줄곧 재정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벌써 6%를 넘었다. 특히 ‘자립 인도’가 이란의 ‘저항 경제’와 유사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핵개발로 서방의 각종 제재에 직면한 이란 정부가 “내수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생필품 품귀, 물가 급등, 화폐가치 하락 등만 나타났다는 의미다.
이를 감안할 때 역설적으로 국경 분쟁이 일정 부분 모디의 통치 기반을 강화해주는 면이 있다. ‘이게 다 중국 탓’이라며 화살을 외부의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난을 해결하지 않는 한 민족 감정만 자극하는 미봉책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 지도자의 최우선 과제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임을 모디 총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