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장을 지낸 김재철 변호사(81)가 6일 육종(育種) 연구에 써 달라며 고려대에 30억 원을 기부했다. 그동안 그의 부친과 자녀가 기부한 것까지 합치면 3대에 걸친 네 번째 기부다. 김 변호사는 “평소 채식을 즐기는데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 대부분이 일본 종자라 안타까웠다”며 ‘종자 극일(克日)’을 당부했다. 향후 20억 원 추가 기부도 약속했다. 고려대는 김 변호사의 호를 딴 ‘오정육종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김 변호사의 아버지 만송 김완섭의 기부도 ‘극일’과 관계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하다 광복 후 대검 검사를 지낸 만송은 수임료를 모아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의 고서를 사들였고, 수임료로 감당이 안 되면 간송 전형필에게 사라고 연락해 국외 유출을 막았다고 한다. 그는 늦깎이 대학원생이 돼 77세에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연으로 이 대학에 고서를 기증했다. 그의 사후 김 변호사와 그의 딸이며 만송의 손녀인 김주현 여사가 잇달아 보물급을 포함한 고서 현대미술품 공예품을 대거 기증했다. 고려대 대학원 내 ‘만송문고’엔 만송이 평생 수집한 고서 1만9071권이 소장돼 있다.
▷한국의 기부 문화는 개인(30%)보다 기업(70%) 중심이며 모금액의 70%가 연말연시에 이뤄진다. 꾸준하고 정기적인 기부 문화가 척박한 셈이다. 부는 3대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나누면 오래간다. 2016년 고려대박물관 오정 컬렉션전의 제목(遺芳百世·유방백세)처럼 아름다운 향기는 영원히 남는 법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