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안 받습니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2층 안내실. 한 중년 남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방문하려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해당 보좌진이 전화를 받지 않은 것.
남성=“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결국 이 남성은 안내데스크 앞에서 발길을 돌린 뒤 의자에 앉아 있던 일행에게 돌아갔다. “지금 사무실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해서요, 잠시만….”
이처럼 의원회관을 찾아온 방문객들은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방문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한 뒤 의원실 보좌진 등과 통화가 돼야 입구를 통과할 수 있다.
고성호 기자가 직접 방문 신청서를 작성한 뒤 접수를 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 방문증.
하지만 최근 방문객들의 의원실 무단방문이 증가하고 있다. 안내실에서 방문증을 한 번 발급받으면 의원회관의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에는 6건, 2019년에는 2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해 4월에는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이 세미나실 참석 목적으로 방문증을 발급받은 뒤 의원실을 기습 방문해 점거농성을 벌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의원회관 4층 중앙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스피드게이트’.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또 중앙엘리베이터를 제외한 다른 엘리베이터에는 카드리더기를 설치했다. 아울러 건물 비상계단에도 각 층 출입문에 카드리더기를 달았다. 국회 사무처는 관련 시설 설치 등에 무려 11억 6000만 원을 투입했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카드리더기.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하지만 이런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한 보좌관은 “방문객이 의원실 직원 신분증을 빌릴 경우 지금처럼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며 “보안 강화 조치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도 “방문객 중에는 의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지인들도 적지 않다. 친분이 있는 다른 의원을 찾아가겠다고 요청할 경우 직원이 직접 다른 층에 있는 의원실로 안내할 수밖에 없다”며 현행 보안강화책에 구멍이 생길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회도 이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보좌진 등의 신분증을 부정하게 사용할 경우 해당 기업체 직원의 회관 출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앞으로 문제점 등이 발생하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