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좀비가 되고 싶어[이승재의 무비홀릭]

입력 | 2020-07-10 03:00:00


좀비영화 ‘#살아있다’의 한 장면. 좀비가 되는 편이 한결 편하지 않을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 개인방역 수칙’을 살펴보셨나요? 제1수칙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제2수칙 ‘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건강거리 두기’, 제3수칙 ‘30초 손 씻기’, 제4수칙 ‘매일 2번 이상 환기’, 제5수칙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예요. 아니, 당연히 지켜야 할 사항들을 왜 뜬금없이 들쑤시느냐고요? 제5수칙을 곰곰이 따져보세요.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가 수칙이라니요? 이상하지 않나요? 수칙이란 ‘지켜야 할 규칙’이에요. ‘환기하기’ ‘손 씻기’는 수칙이 되겠지만,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가 어찌 지켜야 할 규칙일 수 있겠어요? 와우! 만약 ‘거리가 멀어져 마음도 멀어질’ 경우 우린 ‘코로나19 개인방역 수칙’을 어기는 죄를 짓는 거예요. 물론 제5수칙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에요. 그것이 당위라고 해서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수칙으로 삼으려는 시도마저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인간의 정신과 마음세계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니까요.

이처럼 그저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따져보면 잘못되거나 모순투성이인 경우는 일상에 차고 넘쳐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명대사도 생각해 보니 어불성설이네요. 사랑에 빠지는 게 물론 죄는 아니지만, 유부남이 필라테스 여강사와 불륜한 뒤 터진 입으로 조강지처에게 내뱉는 말이라면 그건 말이 아니라 방구이지요. 한 유명 영화감독이 딸에게 보냈다고 알려진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 그 여자가 내게 용기를 줬어. 이제 그 사람과 함께할 거야’라는 문자도 영 이상해요. 남자에게 여자가 생길 수 있고 그녀가 용기를 줄 수도 있고 그녀와 함께할 수도 있지만, 그 남자가 ‘아빠’가 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 또 생각났어요. 더욱 강화된다는 부동산 대책도 그래요. ‘대출 안 되고, 보유세 높이고, 양도세 높인다’는 거잖아요? 이 말은 저 같은 무식한 사람에겐 ‘(집을) 사도 안 되고, 가져도 안 되고, 팔아도 안 된다’는 불가사의한 말처럼 들려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살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 혹은 ‘숨은 쉬어도 심장은 뛰지 말라’ 혹은 ‘술을 마시고 운전해도 음주운전은 하지 말라’처럼 알쏭달쏭한 수수께끼처럼 들린다고요. 흑흑.

하긴, 옳고 그른 것의 경계 자체가 무너진 요즘 같은 초현실주의 세상에선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일조차 무의미한 것 같아요. 얼마 전 조진웅 주연의 영화 ‘사라진 시간’을 보면서 요즘 우리 사회의 자기분열적인 모습과 똑 닮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위대한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려고 쓴 내 시간이야말로 사라진 시간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악평을 쏟아냈고 결국 영화는 망했어요.

각본까지 쓴 정 감독의 당초 시도는 창대했다고 저는 생각해요. 시골 외딴집에 감금된 채 불에 타 죽은 초등학교 교사 부부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조진웅은 마을 어르신의 생일잔치에서 독한 송로주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데, 깨어나 보니 자신은 형사가 아니라 초등교사인 거예요. 그래서 현실과 욕망, 사실과 꿈, 실재와 허상이 뒤섞이면서 내가 형사인지, 교사가 나인지 헷갈리는 호접지몽 스타일의 자아분열을 일으키지요.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경우 ‘23 아이덴티티’나 ‘블랙스완’처럼 ‘주인공이 다중인격이었다’ 혹은 ‘모든 건 주인공의 망상이었다’ 식으로 영화 말미에 똑 부러진 결론을 내줘야 관객들이 찝찝해하질 않아요. 근데 정 감독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선 위를, 그가 출연했던 ‘왕의 남자’의 남사당 패거리마냥 절묘하게 줄타기하면서 명쾌한 답을 내지 않은 채 끝을 열어두지요. 그래서 망한 거예요.

여하튼 저는 2020년 7월을 사는 나 같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영화 속 조진웅과 같은 분열적 상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어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도덕과 패륜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면서 우리가 믿어온 가치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고 정의란 이름의 위선이 부리는 요사스러운 흑마술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니 말이에요.

아, 이 순간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 한 편이 더 떠올랐어요. 얼마 전 개봉한 유아인 주연의 좀비영화 ‘#살아있다’이지요. 어느 날 서울에 좀비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유아인이 사는 아파트 사람들 대부분이 피 칠갑 좀비로 변해 유아인을 씹어 먹으려 득달같이 달려들어요. 아파트에 틀어박혀 남은 식량을 모두 소진한 유아인이 희망을 상실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아파트 건너편 동에 사는 또 다른 생존자 박신혜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생존욕망에 다시 불을 지핀다는 이야기예요.

저는 좀비가 확산하는 영화 속 설정이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와 포개어진다든지, 절망에 빠질수록 힘없는 소수들의 희망연대가 필요하다든지 같은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영화를 보면서 저는 영 다른 생각을 하였어요. 옆집 윗집 아랫집이 모두 좀비가 되어 인육을 탐하는 괴물로 변했는데, 거의 유일하게 생존한 유아인만이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오히려 더 힘겹고 안쓰러워 보였거든요. 저렇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생존하려 발악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웃집 좀비한테 손모가지 한번 산뜻하게 물리고 좀비가 되어 ‘묻어가는’ 편이 100배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좀비가 되면 고통도 못 느끼고 애먼 생각들도 사라져버리잖아요?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선 차라리 판단하지 않아도 되고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살아있는 시체(The Living Dead)로 살아가는 편이 한결 가성비 넘칠 것 같아요. 아잉. 좀비가 되고 싶어. 벌 받고 싶어.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