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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다시 돌아보는 공직 무게와 性도덕

입력 | 2020-07-11 00:00:00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제 0시 1분 북악산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은 유언장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고 했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 대부로 최초의 3선(選) 서울시장이면서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 거론된 박 시장의 죽음은 배경과 이유를 불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인구 1000만 수도 서울의 수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시의 한 여직원은 8일 경찰에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 다음 날 새벽까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고소인 조사가 끝나면 박 시장도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어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성희롱 문제를 법적으로 공론화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었고, 여성 권익 보호를 강조해온 박 시장의 성추행 피소는 공직사회의 성도덕에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를 5일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했다. 고인의 영면을 기리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성추행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과연 적절한 조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 시장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이 아니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이중삼중으로 겪어야 할 심적인 고통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친여 성향 지지자들은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여직원의 신상 털기에 나선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건 경위를 호도하기 위해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벌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성 추문에 휩싸인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특히 대통령 다음의 선출직으로 꼽히는 서울시장 직(職)이 갖는 무게는 새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권은 소속 단체장의 잇단 성 추문 사건을 일과성으로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철저한 자체 조사를 벌여 공직자의 엄중한 처신을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