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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음’과 ‘좋음’이 충돌할 때[김창기의 음악상담실]

입력 | 2020-07-11 03:00:00

<99> 방탄소년단―작은 것들을 위한 시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방탄소년단(BTS)의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결국 소중한 사람과의 소박한 사랑과 연결이 자신의 정체성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삶을 지키는 진짜 힘이라고 노래하죠. 제가 이해하기로 새 앨범에서 BTS는 개인의 다양한 의미와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체성과 독립성을 얻는 젊은 시절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자 권리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전체보다는 개인의 정신적 건강과 발전, 더 나아가서는 그 개인이 가족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안정을 얻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직업 윤리상 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죠. 특히 약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문제를 비롯한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저는 롤스와 같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정의로운 정치의 우선 조건, ‘옳음(권리)이 좋음(선, 가치)에 우선한다’를 떠올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핵심은 롤스가 ‘정의론’에서 서술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당연히 좋음이 옳음에 우선합니다. 우리는 법보다 관계와 정서적 교류, 윤리를 기준으로 살아가니까요. 실생활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함께 논의해서 공동체에 득이 되는 쪽으로 융통성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선한 목적을 추구하는 성숙한 윤리는 이상적이지만 안타깝게도 가정이나 작은 공동체에서만 가능하곤 합니다. 다양한 개인들의 가치가 모인 거대한 공동체인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공정한 법과 규칙으로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통치를 하다 보면 국민 전체에게 좋은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소수에게 피해를 주곤 합니다. 좋음이 옳음 앞에 서기 때문이죠. 파이를 더 키워서 모두 더 먹게 하려 하든, 파이가 작더라도 공평하게 나눠 먹이려 하든 선이라는 목적이 우선되는 힘이 너무 커지면 전체주의적 통치의 길로 들어설 위험성은 높아집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목적을 추구한다면서 오히려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와 절차가 무시되는 일도 생깁니다.

공정은 공동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동일한 비율로 다루어 결정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평등이 아니라 함께 정한 규칙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죠. 좋은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대부분 불만족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공정한 과정은 정치와 법의 힘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과정의 공정성이 일그러져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고, 정부는 오해라고 하죠. 하지만 굳이 롤스가 말하는 ‘원초적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기만 해도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