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서 선보인 한복 만든 디자이너 단하 씨
7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골목에서 만난 블랙핑크 한복 디자이너 단하 씨.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한복 의상을 입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가 최근 발표한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는 발매 8일 차에 최단기간 유튜브 조회수 2억 뷰를 달성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블랙핑크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NBC TV ‘더 투나이트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한국 전통의 봉황 문양이 새겨진 저고리와 한복 치마를 입고 등장해 전 세계에서 동시 접속한 팬 21만 명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유튜브에선 블랙핑크의 개량한복을 입은 해외 팬들의 커버댄스 영상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블랙핑크의 한복을 만든 주인공은 ‘단하주단’ 대표인 단하 씨(30). 7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갑자기 쏟아진 관심이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원래 저희 회사 온라인숍에서 팔던 제품이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온라인숍에서 한복을 구매하려는 해외 팬들의 방문이 하루에 3000∼4000명씩 이어지고 있다. 미국 쪽이 절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 팬들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전통 한복을 개량한 패션을 선보인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제니 씨가 입은 분홍색 의상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고 다니던 겉옷인 ‘도포’다. 단하주단 온라인숍에서 52만 원에 팔리는 옷인데, YG에서 무대에서 춤출 때 편하도록 손질을 했다. 총길이 74cm인 도포의 하단을 잘라 배를 드러내는 짧은 재킷으로 연출했고, 남은 천은 아래에 둘러 치마처럼 표현했다. 로제 씨가 입은 크롭톱(14만 원)은 조선시대 여성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밖으로 노출한 의상이다. 조선시대 궁중보자기에서 사용된 봉황문을 새겨 넣었다. 그 위에 입은 검은색 철릭(88만 원)은 무관들이 입던 공복이다.”
―국내에서는 ‘배꼽티’ 같은 한복이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다.
김민경 한복진흥센터장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히트를 친 후 아마존에서 ‘갓’이 인기리에 팔리고,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한복을 입으면서 구글에서는 ‘한복(hanbok)’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소개했다.
단하 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후 제주도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온라인 한복 대여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조선궁중복식연구원에서 조경숙 명인에게 한복디자인을 정통으로 배웠다. 현재 성균관대 의상학과에서 전통복식 궁중복식 연구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블랙핑크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사람들은 제가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줄 안다. 그러나 저는 인맥도 없는 2년 차 스타트업 디자이너일 뿐이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2주 전쯤인가 YG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지난해 10월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에 출품했던 작품인데, YG 스타일리스트가 이를 눈여겨봤던 게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최종 편집본에서 한복 의상 장면이 삭제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순간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20대 중반부터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한복을 가져가 사진 찍길 좋아했다. 외국인들은 의상이 무척 예쁘다고 하면서도 ‘기모노’냐고 묻기 일쑤였다. 더 많은 K팝 스타와의 협업을 통해 동양 전통의상의 대명사가 ‘한복’이 되길 기대한다. 세계 곳곳의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중국의 고급 치파오 브랜드 ‘상하이탕’처럼, 우리가 만든 한복도 전 세계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로 대접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