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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방사 없는 미사일, 동맹국 모르게 때릴 때 등장

입력 | 2020-07-11 10:45:00

웨펀




프랑스공군의 라팔전투기. [신화=뉴시스]


7월 5일, 리비아 언론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날인 4일 심야에 지중해를 건너온 국적 미상의 전투기들이 리비아 서북부의 알 와티야(Al Watiya) 공군기지를 공습했으며, 이 공습으로 인해 기지에 주둔 중인 터키군의 시설이 파괴된 것은 물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트리폴리의 리비아 통합정부 국방부 대변인에 의해 발표됐는데, 리비아 통합정부는 터키 군사시설을 공습한 전투기들을 ‘국적 불명의 라팔 전투기’라고만 밝혔다. 리비아 인근에서 라팔 전투기를 운용하는 국가는 프랑스와 이집트 두 나라였고, 두 나라 모두 터키와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최초 보도가 나온 다음 날, 리비아 현지 언론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공습은 현지시각으로 4일 심야에 이루어졌고, 알 와타야 기지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상공에서 라팔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기지 내 터키군 방공진지와 지휘소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중해와 가까운 이 기지에는 터키 지상군과 공군, 방공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번 공습으로 기지에 설치되어 있던 터키군 MIM-23 호크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 2대 중 1대가 완파되고 지휘소도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터키 국방부는 피습 기지의 명칭은 밝히지 않고 자국의 군사시설이 피습을 당해 일부 시설이 파괴됐으며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리비아 현지 언론은 트리폴리 통합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 9명 중 다수가 터키군 기지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들이며, 정보기관 관계자도 다수 중상을 입고 터키로 후송됐다고 전했다. 이 정도 피해 규모는 21세기 들어 터키군에게 있었던 최대 규모의 피해였다. 

터키와 프랑스 모두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공습의 배후로 프랑스 공군을 지목했다. 프랑스가 이집트에 라팔 전투기를 팔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반발 때문에 장거리 스탠드 오프 무기를 판매하지 않았고, 공중급유기가 없는 이집트 공군이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1600km 이상 떨어진 리비아 공군기지를 폭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의심받는 이유는 트리폴리 통합정부군의 레이더에 잡힌 기체가 라팔이었고, 이 전투기들이 지중해에서 접근했으며, 프랑스 남부 르 튜브(Le Tube) 공군기지에서 리비아 알 와타야 공군기지까지의 거리가 라팔 전투기의 카탈로그상 작전반경인 1800km의 훨씬 안쪽인 800km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알 와타야 기지를 공격한 것이 프랑스 전투기이고, 리비아 방공망에 탐지된 것처럼 기지 북방 70km 지점에서 무장을 발사해 터키군 지휘소와 지대공 미사일을 파괴한 것이 맞다면, 이번 공격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최신예 스텔스 공대지 미사일인 스칼프-EG가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톰 섀도우 순항 미사일 [위키피디아]


스톰 섀도우(Storm Shadow)라는 수출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미사일은 사거리 550km급의 아음속 공대지 순항 미사일로 우리나라도 도입한 독일제 타우러스(Taurus) KEPD 350과 자주 비교되는 고성능 미사일이다. 발사중량 1.23톤으로 라팔 전투기에 최대 4발이 탑재되며, 발사 후 자동으로 목표를 타격하는 파이어 앤 포겟(Fire & Forget) 방식의 스탠드 오프 무기다. 

미사일 자체가 스텔스 설계를 적용해 제작됐고, 미사일 유도장치에 내장된 디지털 영상 대조 항법(DSMAC: Digital Scene-Mapping Area Correlator) 시스템으로 지형 추적 비행을 하며, 종말 단계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체의 외부 전파 방사가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알 와티야 기지의 터키군 호크 미사일 포대는 프랑스군 미사일의 접근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프랑스가 NATO 동맹국인 터키를 왜 공격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지난달 10일 리비아 인근 지중해 해상에서 발생한 프랑스와 터키의 해상 대치 사건에 있다. 현재 리비아에서는 트리폴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통합정부와 이에 대항하는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의 동부반군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UN은 내전이 한창인 리비아에 그 어떤 무기도 반입해서는 안 된다는 금수 조치를 내걸고 있지만, 이 조치를 지키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트리폴리 통합정부를 지원하는 터키는 아예 군대를 보냈다. 지상군과 해군, 공군이 리비아에 전개해 있으며, 터키산 무기가 트리폴리 통합정부군에 지원되고 있다. 하프타르가 장악한 유전 지대에 대한 이권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진 푸틴은 자신의 개인 사병조직인 바그너 그룹(Wagner Group) 용병 수천 명은 물론 전차와 장갑차, 심지어 전투기까지 용병 소유로 도색을 바꿔 리비아에 파견 중이다. 

프랑스는 NATO의 일원으로 여러 ‘불량 국가’들의 리비아 무기 반입을 저지하기 위한 해양 수호작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터키와 충돌이 발생했다. 프랑스군 라파예트급 호위함 쿠르베(Courbet)함은 6월 10일, 리비아 근해에서 탄자니아 선적의 화물선을 불법 무기 선적 혐의로 추적해 정선을 요구하고 승선 검문을 시도했다. 이 배는 터키에서 출항했고, 터키 회사가 소유한 선박이었는데, 이 배에 프랑스 군함이 접근하자 인근에 있던 터키 호위함이 갑자기 프랑스 호위함에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터키해군이 운용하는 메코200형 야부즈급으로 알려진 이 호위함은 프랑스 해군 라파예트급 호위함에 함대함 미사일을 세 차례 조준했다. 터키 호위함은 하푼 함대함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고, 경무장 호위함인 라파예트급 쿠르베함은 터키가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경우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공 무기가 없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호위함은 화물선 검문을 포기하고 급하게 뱃머리를 돌려 해역을 이탈했다. 

이 사건 직후 프랑스는 외교 채널을 통해 터키에게 사건 해명과 공식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지만, 터키는 오히려 프랑스 군함이 터키 군함과 화물선을 위협했다며 적반하장으로 프랑스를 비난했다. 

이에 프랑스는 터키가 포함된 NATO 주도 해양수호작전 참가 중단을 선언했고, 다음날 유럽연합에 오는 13일 외무장관 회의를 소집해 터키에 대한 유럽연합 차원의 제재안을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기는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아니다. 프랑스의 입김이 강한 EU에서 프랑스가 터키에 대한 제재안을 발의할 경우 가뜩이나 미국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키는 유럽 차원의 제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고, 당연히 터키는 강력히 반발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양측이 대립을 이어가며 유럽연합에 터키 제재 심의안의 발의된 직후, 프랑스는 전투기를 동원해 리비아의 터키 군사시설을 폭격하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폭격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프랑스는 아직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프랑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강펀치를 얻어맞은 터키 역시 이번 사건 언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문제는 13일에 있을 유럽연합 외무장관 회의다. 이 회의에서 프랑스가 예고한 대로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가 가결될 경우 터키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이번 폭격 사건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이 터키를 제재할 경우 터키는 NATO 탈퇴와 보스포러스 해협 접근 차단 등 초강수를 꺼내며 유럽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프랑스와 터키 양국은 해상에서 발생한 우발적 충돌에서 눈덩이처럼 커진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48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