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7만 관객을 모은 영화 ‘부산행’의 4년 뒤 모습이 ‘반도’로 베일을 벗었다. ‘부산행 이후 한반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에 대한 연상호 감독(42)의 상상에서 반도가 출발했다. 홍콩으로 도피했다가 한국으로 되돌아온 정석(강동원), 반도에서 몰래 살아남은 민정(이정현)과 딸들, 국가기능을 상실한 곳에서 미쳐버린 황 중사(김민재)와 서 대위(구교환)는 광기의 땅 반도를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부산행에 이어 ‘반도’도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영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를 되살릴 불씨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연 감독과 배우 강동원(39)을 만났다. 영화는 15일 개봉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사라진 세상 “부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연 감독은 이렇게 입을 뗐다. 반도는 부산행 4년 후를 다룬 만큼 한반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좀비와 인간의 대결보다 생존만을 목표로 살아오면서 인간성 대신 야만성을 키운 인간과, 혼돈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은 인간의 대결이 더 선명하게 와 닿는다.
“제목을 ‘부산행2’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어요. 하지만 반도는 부산행과 독립된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진화한 좀비를 보여주기보다 폐허가 된 땅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려 했죠. 권력을 잡은 631 부대원들은 좀비보다 더 좀비 같아요. 인간과 좀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연 감독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포스트 아포칼립스(거대한 재해나 초자연적 사건으로 인류와 문명이 멸망하는 모습을 그린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폐허가 된 땅’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1년이라는 프리 프로덕션(사전 제작 기간)을 거쳤다.
“하수도 관리가 안돼 모든 땅이 물에 다 잠길 것이라는 설정을 기본으로 공간과 사람의 이미지를 구상했어요. 한국에 태풍과 홍수가 잦으니 자연재해도 몇 차례 휩쓸었을 것이란 가정을 했고요. 초기진압을 위해 다리를 끊었을 것이라는 상상도 했어요.”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상상력이 뛰어난 연 감독은 반도 이후의 이야기도 얼마든 나올 수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이야기가 끝없이 나올 수 있는 소재에요. 반도 이후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제목이 ’반도2‘는 아닐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요. 하하.”
●“한국 최초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꼭 출연하고 싶었다” 연 감독의 설명처럼 부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색의 영화였기에 강동원도 반도를 탈출했다가 다시 발을 들인 전직 군인 정석의 역할을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후속편은 배우로선 호기심이 덜 자극되는 편이긴 해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시나리오를 읽으니 한국에선 처음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라 보는 재미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또 다른 세계관으로 확장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강동원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과 사를 오가는 상황에 수차례 놓이면서 감정의 동요를 겪는 정석의 심리 묘사에 신경을 썼다.
“정석의 감정선에서 변곡점이 크게 세 군데 있어요. 처음 배를 탔을 때,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과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때이죠. 정석은 평범한 캐릭터지만 감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신경 썼어요.”
반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극장에서 개봉을 앞둔 첫 영화다. 185개국에 미리 판매된 반도는 이달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개봉하고 다음달 7일 북미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코로나 이후 월드와이드로 개봉하는 첫 영화에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 첫 영화가 될 줄 알았는데 저희가 됐네요. 친구와 바를 가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시대잖아요. 저희 영화가 영화산업에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