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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의 추억과 추어탕[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77〉

입력 | 2020-07-13 03:00:00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장어 한 마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와 같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 그만큼 미꾸라지의 영양이 풍부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실제 여름철 보신용으로 장어 이상의 가치를 발휘한다. 일본 에도시대(1600∼1867년) 미꾸라지는 국수와 더불어 서민에게는 패스트푸드나 다름없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준비된 상태로 먹을 수 있어 빨리 먹고 일터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전쟁 직후라 항상 배가 고팠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식사 전까지 간식거리를 찾아 동네를 쏘다녔다. 놀이와 음식이 뒤섞인 추억으로 또렷이 기억되고 있다. 들판에 나가면 매미, 잠자리, 메뚜기도 있지만 이맘때가 되면 논두렁 사이로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맨발로 논에 들어가 대나무 뜰채를 깊이 대고 그 위에서 물살을 휘젓거나 물가의 잡초를 밟아 미꾸라지가 걸려들도록 온갖 방법을 썼다.

비밀이지만 정작 미꾸라지를 쉽게 잡는 방법은 따로 있다.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임시로 담을 쌓아 막고 담배 잎사귀를 짓이겨 물에 넣는다. 30분 정도 놀면서 기다리다 보면 물고기가 기절하듯 물 위에 둥둥 뜬다. 근처 농가에서 팔기 위해 키우는 담뱃잎을 훔쳐 미꾸라지를 잡은 것이 발각되는 날이면 식구들이 저녁밥을 먹는 동안 두 손을 들고 벌을 받고 엄마는 ‘도둑놈을 키웠다’고 야단을 치셨다.

미꾸라지 외에도 우렁이, 달팽이, 민물새우…. 먹을 수 있는 건 어떤 것이든 조리도구 없이 불을 지피고 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었다.

칙칙한 회색의 걸쭉한 수프, 시래기라 부르는 잎사귀가 들어가 있는 추어탕은 처음 보면 그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추와 제피, 들깻가루를 넣고 한술을 떠먹는 순간 “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통째로 갈아 만든 미꾸라지 수프에 들어가는 부재료 하나하나도 강한 향과 맛을 지녔지만 한 그릇에 담긴 깊은 맛의 조합은 감동 그 자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추어탕 사랑은 여름, 겨울이 따로 없었다.

솔직히 추어탕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식 부야베스라는 생선수프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프랑스 남부 해안가에서 어부들이 그날 잡은 생선 중 너무 작아 팔 수 없는 것들을 야채와 같이 넣고 익힌 다음 갈아 만든 요리다. 몇 년 전 최고의 부야베스를 맛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프랑스 남부를 돌았다. 그리고 우리만의 것을 연구해 직접 운영하던 오키친의 대표 요리로 선보이기도 했다.

‘미꾸라지 지옥 냄비’라는 유명한 요리가 있다. 두부와 미꾸라지를 찬물에 넣고 끓이다 보면 미꾸라지가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절단면 중간에 박힌 미꾸라지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조리 방법은 훗날 거짓으로 확인되었다. 채식을 했던 중국 승려들이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만든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산천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한국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미꾸라지 체험행사도 매년 진행되고 있다. 올여름 영양 많은 미꾸라지로 보신하면서 코로나19를 잘 극복해 갈 생각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