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진행된 13일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측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박 전 시장이 업무 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에도 고소인을 괴롭혔으며, 권력과 위력에 의한 성적 괴롭힘이 무려 4년간 지속됐다는 주장이다. 반론을 들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박 전 시장을 ‘페미니스트 시장’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겐 충격이란 표현으로도 다 담기 힘든 수준이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이 된 후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으로 2015년 유엔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았다. 2017년엔 “직원 한 명 한 명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겠다”며 서울시 전 부서에 젠더담당관 367명을 지정하고 ‘젠더사무관’(5급)직도 신설했다. 지난해 1월엔 여성가족실 산하에 3개 팀으로 구성된 여성권익담당관(4급) 조직을 만들고 시장실 직속 ‘젠더 특별보좌관’(3급)까지 두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에선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언사나 행동이 상대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던 시기에, 더구나 정기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젠더특보까지 만든 서울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서울시 성폭력 사건 매뉴얼에 따라 가해자가 임원급일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하는데 왜 고소인의 호소를 무시했는지, ‘가해자와의 분리’ 원칙에 따라 고소인의 부서 변경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묵살한 것이 사실인지 밝혀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소인의 바람대로 ‘일상의 온전한 회복’을 돕는다고 박 전 시장이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이뤄낸 업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