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풀 뽑기를 포함해 대개 ‘공동작업’이라 부르는 것들은 원래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다. 청소나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경비원의 일은 현행법상 시설 경비에 해당한다.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라고 돼 있다. 누구라도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시키면 처벌 대상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가볍지 않다. 아파트 경비 일을 갓 시작한 분들이 업무일지에 ‘분리수거’라고 적어놓으면 관리소장이 득달같이 불러서 다시 쓰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이다. 그런데 경비원들이 제도 적용 대상이 된 건 2007년부터다. 이마저도 감액이 적용돼 최저임금의 70%만 받을 수 있었다. 비율이 차츰 높아져 2015년에 100%가 됐다. 경비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일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직종이다.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승인받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주 정부가 ‘공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대책’을 내놨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고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경비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방범 외 업무를 인정하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돼 연장근로 시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져 일자리가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입주민(2124명) 대상 조사에선 15개 지역 모두 ‘관리비가 인상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응답이 ‘감원 불가피’보다 더 많았다. 경비 업무 비중이 3분의 1밖에 안 될 만큼 다른 일을 많이 하고 있다면 현실을 반영해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게 맞아 보인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