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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피해여성 위로” 처음 사과… 대변인이 대신 읽어 논란

입력 | 2020-07-14 03:00:00

[박원순 고소인측 회견]성추행 정황 나오자 여론 더 악화
이해찬 “재발 없도록 최선 다할 것”… 당내 “내년 재보선 어쩌나” 우려
野 “진상 밝혀라” 공세수위 높여
여야 잇단 충돌로 국회일정 마비… 文대통령 개원 연설 사실상 포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치러진 13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성추행 피해 여성 A 씨의 법률대리인이 기자회견을 한 지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외면했던 이 대표가 성추행 정황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폭로가 나오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급하게 뱃머리를 돌렸지만 미래통합당은 관련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열린 당 고위전략회의에서 이 대표가 “예기치 못한 일로 시정 공백이 생긴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또 “이 대표가 ‘당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가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인한 서울시의 행정 차질에 우려를 표한 적은 있었지만 피해 여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 여성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성추행 정황을 알렸고, 여론이 악화되자 이 대표가 더 이상 입장 표명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개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고, 대변인이 이 대표의 말을 대신 전하는 ‘사과 대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의 사과에 앞서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에서는 김해영 최고위원이 처음으로 사과 입장을 내놨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의 일원으로 서울시민, 국민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러다 정말 내년 4월 재·보선을 어떻게 치를지 걱정”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재·보궐선거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이 걸린 초대형 선거로 임기 후반부를 맞는 문재인 정부의 운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동산 광풍’으로 민심 이반이 심각해진 가운데 박 전 시장의 성추문에 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당을 뒤덮은 상황. 한 민주당 의원은 “주변 의원들도 이번 사건이 내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당 지도부가 중심이 돼 빨리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통합당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을 총선 이후 ‘기울어진 정국’을 반전시킬 터닝포인트로 보고 진상조사 방안을 마련 중이다.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영결식 과정에선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지만 (이제) 피해자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모는 2차 가해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성추행 의혹 규명을 강조하고 있는 통합당은 아울러 피해자 측이 경찰에 고소 사실에 대한 보안을 요청했지만 박 전 시장이 고소 사실을 알게 돼 증거 인멸 기회를 제공한 점 등을 밝혀내야 할 주요 사안으로 꼽고 있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경찰은 약자가 아닌 강자의 편에 섰는지 유출 의혹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비공개 회의에서 성추행 의혹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책 문제를 핵심 과제로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추행 의혹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 현안으로 국회 의사일정이 마비되면서 청와대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개원 연설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미래통합당이 개원식 개최에 반대하면서 계속 합의를 안 해주고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예상되는 수순”이라며 “공수처 출범 법정일 등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기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대통령의 개원 연설은 힘들다”고 설명했다.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21대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늦은 개원식을 열 수밖에 없게 됐다.

정의당도 후폭풍에 휘말렸다. 류호정, 장혜영 의원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거부’에 반발한 일부 당원들이 정의당을 탈당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당원들이 ‘탈당 거부 운동’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13일 정의당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당 온라인 게시판에는 ‘#탈당하지_않겠습니다’ ‘#지금은_정의당에_힘을_실어줄_때’ 등의 글이 해시태그와 함께 잇따라 올라왔다.

한편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해찬 대표가 박 전 시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기자에게 욕설을 한 것과 관련해 “저속한 비어를 사용하면서 취재기자에게 모욕을 준 것은 기자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이자 또 다른 비하 발언이다”라며 “이 대표의 진심 어린 사과와 결자해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준일 jikim@donga.com·황형준·손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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