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고소인측 회견]‘공무상 비밀누설’ 이슈 부상
7월 9일 오전 10시 44분경 공관을 나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56분경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재동초등학교 후문 인근에서 폐쇄회로(CC)TV에 찍혔던 모습. 당시 박 전 시장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고 있다. 독자 제공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관련 고소장이 제출된 8일에 경찰이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박 전 시장도 보좌진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야당 등은 경찰이나 청와대 보고 라인에서 수사정보가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경찰, 고소장 접수 즉시 靑에 보고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지방경찰청은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고 피해자인 서울시 직원 A 씨가 고소인 조사를 받은 8일 해당 사실을 상급기관인 경찰청에 보고했다. 경찰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장차관,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주요 인물의 범죄에 대해선 상급기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경찰청은 같은 날 서울경찰청의 보고를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피해자 측 보안 요청에도 수사정보 유출
야당은 박 전 시장이 8일 보좌진으로부터 자신의 피소 사실을 전달받은 것을 문제 삼았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경찰이) 수사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고, 상부를 거쳐 그것이 피고소인에게 바로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여기서 피고소인에게 전달된 흔적이란 “경찰 수뇌부 또는 청와대를 의미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청와대는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박 전 시장 측에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고소장이 접수된 다음 날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수사정보의 외부 유출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조사만 마친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피의사실이 전달된 건 공무상 비밀누설죄 또는 증거인멸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실체보다 자칫 경찰 수사지휘라인의 보고 과정과 외부 누설 경위 등이 더 파급력이 큰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경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경찰은 8일 오후 4시 반부터 9일 오전 2시 반까지 총 10시간 동안 A 씨 조사를 마친 뒤 관련 참고인 보강 조사를 거쳐 박 전 시장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성범죄 관련 수사 절차상 피고소인에게는 마지막까지 보안을 지켜야 수사가 절차대로 진행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팀에서는 박 전 시장 측에 어떠한 관련 내용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 전 시장의 수사정보가 경찰 보고라인을 통해 청와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외부로 새어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A 씨 측은 수사정보 유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수사팀에 메시지를 보낸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달라. 절대적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고소를 진행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 “인터넷상의 가짜 고소장 등 2차 가해 처벌을”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A 씨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 2차 가해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1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지적한 2차 가해는 현재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피해자 관련 신상 및 고소장이라는 제목이 달린 가짜 문건 유포 등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고소장 문건은 우리가 제출한 게 아니다”면서도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들어 있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해당 문건을 유포한 사람들을 포함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바란다”고 밝혔다. 2차 가해 관련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조사 및 처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박효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