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선엽 장군(사진)의 장례를 둘러싸고 현대판 예송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습니다. 백 장군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였습니다. 그에게는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과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친일파’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功)과 과(過)가 엇갈리는 한 인물의 장례를 놓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가열됐습니다.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뒤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간도 특설대는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 특수부대입니다. 6·25전쟁 때는 1사단장을 지냈고 그 뒤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정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 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습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진급했습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삶이었다며 애도했습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6·25전쟁 영웅’, ‘살아있는 전설’ 백 장군님을 지칭하는 그 어떤 이름들로도 감사함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립대전현충원이 아니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의 논란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윤경로 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일차적으로 현충원에 모시지 않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다. 만약 현충원에 안장이 된다면 흠결도 같이 기록해 놓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더 이상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논란 끝에 정부는 백 장군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송 논쟁과 백 장군 장례 논란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정파에 따른 논쟁을 촉발했다는 점, 국론이 나뉘었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많은 논란을 뒤로한 채 백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