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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논란

입력 | 2020-07-15 03:00:00


조선 시대에 성리학 예법 적용을 둘러싸고 예송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왕이나 왕비가 죽었을 때, 어머니나 시어머니인 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는 것이 알맞은가’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장례 예법에 대한 논란이었지만 본질은 서인과 남인의 권력 다툼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적용되는 예법과 왕위 계승 원칙 등 현실 정치의 핵심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었던 것이죠.

10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선엽 장군(사진)의 장례를 둘러싸고 현대판 예송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습니다. 백 장군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였습니다. 그에게는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과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친일파’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功)과 과(過)가 엇갈리는 한 인물의 장례를 놓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가열됐습니다.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뒤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간도 특설대는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 특수부대입니다. 6·25전쟁 때는 1사단장을 지냈고 그 뒤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정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 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습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진급했습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12일(현지 시간) “백선엽 장군과 다른 영웅들 덕분에 한국이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백 장군 별세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정의당은 친일 행위를 반성조차 하지 않았는데 국립현충원 안장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독립군을 토벌한 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과연 앞서 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어떤 낯으로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삶이었다며 애도했습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6·25전쟁 영웅’, ‘살아있는 전설’ 백 장군님을 지칭하는 그 어떤 이름들로도 감사함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립대전현충원이 아니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의 논란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윤경로 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일차적으로 현충원에 모시지 않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다. 만약 현충원에 안장이 된다면 흠결도 같이 기록해 놓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더 이상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논란 끝에 정부는 백 장군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송 논쟁과 백 장군 장례 논란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정파에 따른 논쟁을 촉발했다는 점, 국론이 나뉘었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많은 논란을 뒤로한 채 백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