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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운동선수의 공통점? 합숙[오늘과 내일/서정보]

입력 | 2020-07-15 03:00:00

장기간 합숙 통해 통제 받아… 자율적 관리의 힘 키워줄 때




서정보 문화부장

최근 케이블 채널 엠넷에서는 남성 아이돌그룹 결성을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랜드’를 방영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가 주도하는 이 프로그램은 23명의 지원자 중에 12명은 1군이라 할 수 있는 ‘아이랜드’에, 나머지는 2군 격인 ‘그라운드’에 들어간다. 이후 끝없는 경쟁을 통해 아이랜드와 그라운드를 오가는 구조로 진행된다. 마지막에 아이랜드에 남는 지원자들이 빅히트의 새로운 그룹 데뷔 멤버가 된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세트는 60억 원을 들여 지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화려하다. 공연장 연습장뿐만 아니라 숙소까지 지어졌는데, 아이랜드의 숙소 시설은 5성급 호텔을 뺨칠 정도로 잘돼 있다. 그라운드로 떨어진 한 참가자는 “꼭 저기(아이랜드 숙소)로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숙소와 연습장 곳곳에는 CCTV가 설치돼 있어 지원자가 뭘 하고 있는지 수시로 볼 수 있다. 물론 지원자들의 동의를 받았겠지만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연습생 때는 물론 아이돌로 데뷔하고 난 뒤에도 합숙 생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재능 있지만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아이돌이 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려면 합숙 생활이 필수라는 것이다.

요즘 ‘How You Like That’으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소속사의 6대 금기를 말한 적이 있다. 술 담배 클럽 운전 성형 연애다. 수도원 같은 생활이 아니고는 생각하기 힘든 금기들이다. 데뷔한 뒤에도 신인 때는 금기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소개한 모양이지만 이 정도면 인권 침해 수준이다.

아이돌만큼이나 합숙을 많이 하는 분야는 바로 체육이다. 초중고교팀부터 성인 팀까지 대회 훈련 등을 위해 합숙은 필수로 통한다.

합숙은 단기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생활 체육의 저변이 넓지 않은데도 일당백의 선수들이 나타나 국위를 선양하는 데는 이런 합숙의 효과가 톡톡히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합숙이 만능키가 될 수는 없다. 뒤집어 얘기하면 가장 손쉬운 통제 방식이 바로 합숙이다.

유명 걸그룹인 AOA 민아는 멤버들과 합숙하면서 리더인 지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지민이 사과하고 연예계를 떠났다. 철인3종경기 선수였던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의 경우도 합숙 과정에서 감독과 주장(리더)의 괴롭힘을 참다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 선수는 괴롭힘에 대해 여러 곳에 호소했지만 어느 곳도 받아주질 않았다.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선후배 사이가 깍듯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합숙 문화는 생활 권력 남용의 무풍지대가 되기 십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 판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폭력의 18.6%, 성폭력의 36%가 합숙 과정에서 발생했다. 스타가 되고 싶다는 절박한 바람을 가진 아이돌 연습생이나 운동선수들은 합숙 과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부조리에 대해 쉽게 얘기할 수 없다.

합숙이라는 형태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돌 연습생과 체육 선수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문화가 합숙과 맞물리며 나쁜 방향으로 증폭되기 일쑤다. 개성 강한 10, 20대들이 자율적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분위기와 문화로 바꿔야 할 시점이 됐다. 각종 통제를 받던 아이돌이 인기를 얻어 통제가 풀리면 자기 절제를 못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보지 않나.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