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그렇다면 이미 트라우마로 태어난 삶을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일까요? 한 가지 방법은 프로이트의 구조이론을 따르는 겁니다. 이드, 자아, 초자아가 등장합니다. 이드는 욕망의 집합체로 무의식에 살고, 초자아는 도덕 양심 자아 이상(理想)의 덩어리로 의식과 무의식에 걸쳐 있으며, 자아는 이드, 초자아,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며 역시 의식과 무의식에 위치합니다. 이 세 가지 기능 사이에 균형이 잘 이루어지면 건강한 삶, 기울어지면 건강하지 못한 삶이 된다고 정신분석에서는 봅니다. 이드의 활동이 과도하면 욕망이 적절하지 못하게 분출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자아 기능이 허약하면 판단, 조정, 결정을 못하고 삶을 낭비합니다. 초자아의 힘이 부족해도, 지나쳐도 마음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초자아를 도덕적 통제와 완벽함(자아 이상)을 추구하는 노력의 합체로 보았습니다. 세 살 이후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면서 초자아가 생긴다고 좁게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멜라니 클라인은 초자아의 원초적인 형태는 이미 신생아의 마음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 정신분석학은 클라인의 주장에 더 무게를 둡니다.
마음의 늪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자아 기능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믿을 만한 사람과, 가능하면 마음의 전문가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망설일 여유도, 이유도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초자아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부추겨 자아를 판단 불능 상태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숴버리려는 행동을 혼돈 상태에서 시작하기 전에 전문가를 급하게 만나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들이 강제력을 써서라도 일단 그렇게 해야 합니다.
초자아의 주된 기능인 도덕적 통제는 옳고 그름에 관한 것입니다. 추가 기능인 자아 이상은 내가 지향하는,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어야만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맡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지만, 초자아는 갑자기 또는 과도하게 흥분하면 자아를 대놓고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엄격하고 경직된 초자아의 움직임은 강박 신경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한다는 초자아의 명령에 피부염이 생기고 피가 날 때까지 씻은 손을 씻고 또 씻습니다. 심한 우울증에서도 비정상적인 초자아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자기 파괴라는 불행한 결과가 드물지 않게 생깁니다. 밝은 세상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컴컴한 그림자로 가려지는 삶의 여정에서 초자아는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등대입니다. 녹록하지도 않고 소원하는 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삶의 순간순간, 판단하고 참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삶의 지침을 밖에서 구하려 하고 그 지침을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내면의 초자아에 거의 모두 보관되어 있습니다. 초자아에 내장된 인생 교본은 끊임없이 삶의 경로를 지시합니다. 그러다가 작동에 이상이 생기면 통제 불능의 에너지가 마음에 쌓이고, 회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삶과 관계와 자신을 파괴하는 무서운 폭발이 일어납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초자아는 자기 성찰의 자세로 자아를 위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봅니다.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욕망을 억제하면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 속에서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추구하며 꿈을 이루도록 자아를 지원합니다. 비정상 상태의 초자아도 자아를 위에서 지켜보지만 이미 자아와 관계를 끊어버린 상태로 작동합니다. 일방적으로 비판과 공격의 포화를 퍼붓기만 하지 삶의 문제를 자아가 파악하고 탐구하며 이해하도록 돕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초자아는 마음을 통제 불능 상태로 몰아가야만 만족을 하는 ‘마음의 폭탄’입니다. 언제 어떻게 초자아에 기능 이상이 생길지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일부러 자주 초자아의 위치에서 마음 흐름을 내려다보며 겸손하게, 양보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