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낯선 행성’ 번역한 황석희씨 e메일 인터뷰
황석희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화 번역가는 김은주 님 등 여성 선배들이다. 나는 여전히 이분들의 작업을 보며 배우고 있다. 번역에 관심이 있다면 ‘나이브스 아웃’처럼 깔끔한 영어 대본을 구해 번역과 비교하며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고 했다. 홍두리 사진가 제공
“자식이 종이에 왁스를 입혔다. 지속 보존고에 붙여 놓겠다. (=얘가 그린 그림 좀 봐. 냉장고에 붙여놓을게.)”
어설프게 번역했다가는 어색한 실소만 짓게 만들기 쉬운 내용이다. 적절한 한국어로 영어 개그의 분위기 전달과 뜻 해석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번역자 황석희 씨(41)의 이름을 확인하고 대부분 마음을 놓을 것이다.
책 출간을 맞아 동아일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황 씨는 “거의 모든 단어를 일반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만 사용한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change’라고 하면 될 상황에서 굳이 ‘alter’를 쓴다든가…. 의미가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다른 단어들을 골라서 사용했어요. 그게 낯설면서 우스워요. 책 전체가 기발한 위트로 채워져 있어서 번역하는 재미가 컸어요. 가급적 영어 원문을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만화 ‘낯선 행성’은 지구 말을 갓 배운 외계인들의 대화를 코믹하게 그렸다. 시공사 제공
“번역은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해 온전하고 충실하게 옮기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은 실패의 기술’이라고 한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말에 동의해요.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하고, 번역자는 늘 원문과 싸우다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불가능한 승리를 꿈꾸며 무리하는 것보다 현명한 실패와 패배의 길을 모색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꾸역꾸역’ 억지로 하는 거죠. 프로라면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요. 나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번역자인 아내가, 다행히 늘 큰 힘이 돼 줍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