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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평양냉면? 막국수? 여름철 더위 날릴 중국냉면의 유혹

입력 | 2020-07-15 03:00:00


반포양자강의 중국냉면.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한 주,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평양냉면이나 막국수 전문점으로 향할 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중국집이다. 불과 기름의 잔치인 중국요리에서 “뭐 먹을 것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여름을 노리고 웅크렸던 ‘잠룡’이 있으니 중국냉면이다. 물론 이 메뉴는 한국식 짜장면처럼 중국 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음식이든 물이든 냉한 것에 질겁하는 중국 사람들이라 면 요리를 차갑게, 그것도 얼음까지 띄워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슷한 음식을 굳이 찾는다면 연변냉면을 들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면, 육수, 고명의 특성이 많이 다르다. 중국냉면은 우리나라 중국집에서 한국 사람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추어 평양냉면과 단단몐(탄탄면), 냉채의 매력을 절묘하게 버무려 만든 요리다.

제대로 중국냉면을 하는 곳을 들라면 30년 내공의 반포양자강이다. 대부분의 중국집은 여름철 잠깐 파는 중국냉면 육수로 시판되는 동치미 육수를 쓴다. 그런데 이곳은 냉면과 ‘정면승부’를 펼친다. 맛있는 냉면의 4대 요소인 육수, 면발, 고명, 소스의 진가를 고루 갖추었다. 먼저 육수는 직접 쇠고기 양지를 우려서 낸다. 맛술로 잡내를 잡고 식초로 새콤함을 더한다. 깔끔한 감칠맛이 평양냉면 전문점의 육수를 능가한다. 면은 짜장면도 기스면도 아닌 그 중간쯤의 중소면을 쓴다. 납작하게 눌린 면인데 차가운 육수에 탄력이 더해져 알단테의 파스타 면을 씹는 듯하다. 가느다란 면발이 겹겹이 육수를 머금고 입으로 후루룩 들어온다. 사박사박 씹히는 면다발의 탄력에 사그라졌던 식욕이 고개를 든다.

냉면에 올라가는 고명도 훌륭하다. 고급 중식당의 냉채 요리를 고스란히 올려낸다. 쇠고기 편육, 오동통 순살이 부드러운 전복과 새우, 말캉말캉 씹히는 해삼, 차지게 혀를 감아 도는 오징어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거기에 육수에 표류하던 해파리냉채까지 겨자의 날개를 달고 알싸하게 파고든다. 토마토 한 조각, 빨강과 노랑의 파프리카, 초록의 새싹채소는 냉면 한 그릇을 수묵담채화처럼 물들였다.

중국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있다. 우선 고명을 중국식 전채 요리처럼 고급스럽게 즐긴다. 그 다음엔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를 시원하게 마신다. 이제 육수에 겨자와 화생장(땅콩소스)을 풀어 본격적으로 면치기를 시작하는데 이때가 냉면의 절정이다. 면을 씹을 때 터지는 땅콩소스는 어렸을 때 먹었던 땅콩샌드나 영화관 앞 포장마차에서 구운 땅콩처럼 맛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남은 ‘필살기’는 남은 면을 건져내 화생장과 라유(고추기름)에 비벼 먹는 방법이다. 주방에 따로 요청을 하면 라유를 내어주는데 냉면에 식초를 뿌리듯 면발에 한두 방울 살짝 뿌려서 쓱쓱 비벼 먹으면 입안이 얼얼하면서 속이 후련하다. 냉면 그릇 바닥이 보일 때 아랫배가 살살 시린 감이 있는데 라유의 매운 열감이 들어가면서 습기를 날려주고 체온을 기분 좋게 맞춰준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반포양자강: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257, 명품중국냉면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