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 살해혐의' 법원 "직접 증거없어 유죄 어렵다" 사망 원인 찾고도 범인 못밝힌 황당한 사건으로 남아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15일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무죄 판단의 근거는 검찰의 입증 부족이다. 재판부는 “살인죄에 대한 혐의 입증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지만, 의심스러운 사정을 확실히 배제할 수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 남편 옆에서 의붓아들 살해 시도 어려워
재판부는 평소 얕은 수면 습관으로 잠에서 자주 깨어나는 현 남편 옆에서 고씨가 의붓아들을 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현 남편이 고씨가 평소 피해자에게 엄마로서 잘해주려고 노력했다는 진술을 한 점, 현 남편과의 원만한 혼인관계를 위해서는 피해자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또 “고씨가 현 남편과 감정적인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싸우던 중이었음에도 피해자를 데려오기 위해 배냇머리를 챙겨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피해자를 위해 병원 성장클리닉에도 진료를 예약하는 등 청주집으로 유인해 살해할 의도였다면 번거롭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거나, 진료예약을 할 이유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 “법의학자 증언 법정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
항소심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던 법의학자와 부검의 등의 진술 내용을 법정 근거로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도 내놨다.
이어 “피해자가 어린 나이고 시신의 상태에 따라 점출혈 발생과 사체 강직의 정도가 상이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당시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 상태여서 약물 부작용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심과 같은 판단이 나오자 피해자 측 가족과 변호인이 참석한 방청석에서는 낮은 탄식 흘러나오기도 했다. 현 남편인 A씨는 판결 내용이 무죄쪽으로 기울자 방청 도중 법정을 빠져나갔다.
2심 재판부마저도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붓아들 죽음은 ‘원인’을 찾고도 ‘범인’은 가려내지 못한 다소 황당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담담한 자세로 선고를 듣던 고유정은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지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곧바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약 10여분 뒤 고씨는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며 호송차에 올랐다.
고씨는 지난해 5월25일 오후 8시10분에서 9시50분 사이에 제주시 조천읍의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사망당시 36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후 바다와 쓰레기 처리시설 등에 버린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고씨는 같은해 3월2일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의붓아들의 등 위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에 파묻히게 눌러 살해한 혐의도 받았다.
[제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