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규제 안 받는 공모펀드로 변질… 라임 DLF 옵티머스 젠투 등 피해 속출 투자자 보호 수준에 따라 펀드 세분화해야 금융당국의 존재 이유는 ‘보호와 관리’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금융학회장
2015년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사모펀드에 최소 투자금액 규제가 있는 것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일반투자자의 사모펀드 투자를 제한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최소 투자금액을 낮춘 이유가 1억 원 이상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투자자 보호 대상에서 제외해도 괜찮겠다는 금융당국의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주된 이유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모험자본 공급 확대였다.
규제완화의 이유가 규제의 목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규제완화에 따라 당연히 수반되었어야 할 감독 방안이 제대로 준비되었을 리 만무했다. 설상가상 2018년 사모펀드 투자자 수 상한이 49인에서 100인으로 상향되었고 이것도 부족해 금융회사들의 사모펀드 쪼개기도 용인되어 사모펀드는 규제받지 않는 사실상의 공모펀드로 변질되었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제도를 개선하면서 모험자본 공급 등 순기능을 위해 운용의 자율성은 계속 유지하되 투자자 보호와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선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작금의 사모펀드 문제가 금융당국이 모험자본 공급을 걱정하면서 발생했는데도 아직도 모험자본 공급에 대한 정책적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사모펀드 운용의 자율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 보호와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없으면 금융당국이 나서서 규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의 관점에서 본다면 보호의 수준 및 규제의 정도에 따라 사모펀드를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사모펀드와 같이 투자자 보호가 거의 필요 없어서 펀드 운용에 대한 규제도 거의 필요 없는 사모펀드와 공모와 사모의 중간 정도로 투자자 보호와 이에 상응하는 규제가 적용되는 사모펀드로 구분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2018년 발의되었던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안에서 제시된 기관전용 사모펀드와 일반투자자 사모펀드의 개념과 유사하다. 단지 고액자산가의 투자 선택권 보호를 위해서는 기관전용에 고액자산가도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투자자용 사모펀드의 경우는 최소 투자금액은 1억 원으로 유지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금융당국의 존재 이유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며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와 감독이다. 이번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 규제가 기업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치우쳐 활용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규제와 감독의 실패 사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또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도와주기 위해 대형 사모펀드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해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한 것의 ‘시즌2’처럼 들린다. 금융당국은 기관전용 사모펀드에 대해 ‘투자자 보호’와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해 필요한 규제 및 감독 방안을 마련하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모펀드 제도 아래에서 대형 사모펀드가 다수 출현하든 못하든, 이 사모펀드 자금이 모험자본의 형태로 기업으로 흘러가든 못하든 그건 투자의 논리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금융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