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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 이탈리안 멜랑콜리[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입력 | 2020-07-17 03:00:00


이탈리아 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가 음악을 맡은 영화 ‘장고’(1966년)와 ‘일 포스티노’(1994년)의 포스터.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는다.

임희윤 기자

장고 하면 총 든 장고밖에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고전 ‘장고’(1966년)의 주인공 말이다. 스파게티 맛도 몰랐지만 ‘장고2―돌아온 장고’(1987년)까지 연속으로 보고 나면 장고 역 배우 프랑코 네로의 무심하고 염세적인 표정이 몸에 배어버렸다. 엄마한테 혼나고 나도 그 표정이 지어졌으니까. ‘나는야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소년 장고. 돌잡이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펜이나 기타 말고 총을 쥐리라….’

#1. 블랙 패션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장고는 늘 큰 관을 맨땅에 질질 끌고 다녔다. 연발권총도 권총이지만 장고의 기관포가 몹시 탐났다. 그거 한 자루면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를 쓸어버리고도 남을 듯했으니까. 장고는 그때 이미 나의 짐 모리슨(1943∼1971)이요 커트 코베인(1967∼1994)이며 빌리 아일리시였던 것이다.

#2. 기관포 못잖게 ‘장고’의 압권은 주제곡이었다. ‘좽고(Django)∼’의 계이름 ‘라-레’와 ‘D마이너-G메이저’ 코드진행은 비장한 스파게티 진군가였다. ‘장고’의 음악을 담당한 것이 루이스 바칼로프(1933∼2017)라는 이탈리아 작곡가 할아버지라는 걸 안 것은 물론 먼 훗날의 일. 영화 ‘일 포스티노’(1994년)에서 이탈리아의 작은 섬을 햇빛 융단처럼 수놓던 우편배달부의 따사로운 테마 역시 바칼로프의 작품이라는 것도.

#3. 7년 전,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뉴트롤스’의 리더 비토리오 데스칼치와 국제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데스칼치는 자기 방 피아노에 앉아 뉴트롤스의 대표곡 ‘Adagio(Shadows)’를 연주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줬다. 1년 뒤 내한공연차 서울에 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뉴트롤스의 대표 앨범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때 나랑 마에스트로가…”를 해시태그처럼 붙였다.

#4. 그렇다. 그 마에스트로는 바칼로프였다. ‘Concerto grosso…’ 앨범의 오케스트라 편곡자. 바칼로프는 자국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와 즐겨 작업을 했는데, 또 다른 예가 나폴리 출신 그룹 ‘오산나’다. ‘There will be time∼’의 후렴구로 잘 알려진 오산나의 명곡 ‘Canzona’도 바칼로프가 지은 선율인 것이다. 오산나와 바칼로프가 합작한 영화 ‘밀라노 칼리브로 9’(1972년) 사운드트랙에 실렸다.

#5. 실은 마에스트로들의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가 6일(현지 시간) 별세한 뒤 이탈리아 영화음악 명장들이 줄줄이 떠오르고 말았다. 근년에 그쪽 별들이 약속한 듯 떨어졌다. 이탈리아산 최루성 멜로 ‘라스트 콘서트’(1976년)의 음악을 책임진 스텔비오 치프리아니(1937∼2018), ‘장고2―돌아온 장고’를 맡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숨은 조력자 잔프랑코 플레니치오(1941∼2017)…. 이들은 신문 부고란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대부’ ‘태양은 가득히’의 니노 로타(1911∼1979)의 후예들로서 말이다.

#6. 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스파게티 웨스턴은 물론이고 폴리치오테스코(poliziottesco·1960, 70년대에 융성한 이탈리아 범죄영화 장르)나 잘로(giallo·비슷한 시기에 발달한 이탈리아의 스릴러와 호러)도 밋밋했을 것이다. 세르조 레오네,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가 할리우드에 미친 영향조차 줄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7. 쿠엔틴 타란티노는 성공한 마니아요, 이탈리아의 양아들이다. ‘킬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등 자신의 영화에 줄기차게 모리코네와 바칼로프의 선율을 집어넣던 타란티노는 마침내 오랜 ‘인용’의 나날을 뒤로하고 ‘헤이트풀8’(2015년)에서 모리코네에게 직접 음악을 맡겼다. 그 영화음악으로 모리코네는 무려 88세의 나이에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됐으니 타란티노는 양자이되 효자인 셈이다.

#8. 당분간 나만의 이탈리아 기행을 계속할 작정이다. 토요일 낮엔 ‘내 이름은 튜니티’(1970년)를 다시 보고 주말 밤엔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의 잔혹 연상을 눈에 담으며 출퇴근길에는 아직 우리 곁에 있는 밴드 ‘고블린’과 니콜라 피오바니의 음악을 정주행할 생각이다. 아디오, 이탈리안 멜랑콜리. 아직 석양은 지지 않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