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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프러포즈한 바로 그 반지

입력 | 2020-07-18 11:06:00


대관복을 입은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 나폴레옹의 프러포즈 반지 ‘너와 나(Toi et Moi) 링’의 200여 년 전 모델(왼쪽부터). [쇼메]

정복자이자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은 첫 번째 부인 조세핀 황후와의 열정적인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황제가 된 뒤 조세핀 황후를 버리고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와 정략 결혼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내 안에는 다른 두 인간이 있다. 머리를 가진 인간과 가슴을 가진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의 가슴을 가장 강력하게 휘저어놓은 여인이 조세핀이었다. 

‘너와 나 링’ 현재 모델.

열정적인 사랑을 한 나폴레옹이 프러포즈한 것과 똑같은 반지로 지금도 많은 남성이 청혼을 하고 있다. 200여 년 전 나폴레옹이 프러포즈한 반지인 ‘너와 나(Toi et Moi) 링’을 쇼메 매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쇼메는 24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쇼메 창립자 니토(왼쪽)와 프랑스 파리 방돔광장 쇼메. [쇼메]

프랑스 파리지앵 하이 주얼러 쇼메(Chaumet)는 1780년 설립됐다. 쇼메 창시자인 니토가 프랑스 황실의 공식 주얼러로 임명된 것이 1805년. 자연스럽게 쇼메는 조세핀 황후와 나폴레옹 황제의 공식 행사 및 일상생활을 위한 수많은 주얼리를 직접 제작했다. 

1809년 니토가 타계한 후 그의 아들 프랑수아 르뇨(1779~1853)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1810년 새로운 황후 마리 루이즈의 공식 주얼러가 됐다. 르뇨는 1812년 방돔광장 15번지에 부티크를 연 최초의 주얼러였다. 한 세기 후 그의 후계자인 조세프 쇼메(1852~1928)가 방돔광장 12번지로 공방을 옮기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황실뿐 아니라 다른 나라 왕족도 자신들의 지위와 왕권을 강화하고자 쇼메의 디아뎀(Diadem·사회 계급과 권력을 상징하던 머리 장신구), 주얼리 세트 등을 주문, 제작해왔다. 2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쇼메의 손에서 탄생한 역사적 보물, 세계에서 유일한 보석, 황실 및 귀족의 주얼리 세트를 보면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쇼메의 240년 역사 속으로 주얼리 여행을 떠나본다.

나폴레옹이 주문한 집정관의 검

집정관의 검(1802). [쇼메]

1802년 나폴레옹이 집정관으로 임명됐을 때 그는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검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 프랑스 국고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얼리를 사용하라는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집정관의 검에 세팅된 주얼리는 대부분 왕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니토는 검의 날 밑 부분에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140캐럿이 넘는 무게를 가진 리젠트 다이아몬드는 1717년 오를레앙의 리젠트 필리프 공작으로부터 구매한 것으로, 루이 15세와 16세의 대관식에 사용된 왕관의 메인 스톤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국가 행사 당시 착용했던,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꼽히는 주얼리였다. 

그런 다이아몬드가 나폴레옹의 검을 장식하게 됐다.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성당에서 나폴레옹의 황제 취임식이 있었는데, 당시 나폴레옹은 집정관의 검을 자랑스럽게 착용했다. 이후 집정관의 검은 ‘황제의 검’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는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교황 비오 7세의 교황관

교황관(1804~1805). [쇼메]

나폴레옹의 황제 취임식을 진행한 이는 교황 비오 7세였다. 나폴레옹은 교황이 파리로 와준 데 대한 감사 의미로, 교황의 주권을 상징하는 교황관을 수여했다. 교황관은 맨 꼭대기 십자가를 정점으로 3층을 이루고 있어 ‘삼중관’으로도 불린다. 

교황관 꼭대기의 십자가는 414캐럿으로 조각된 에메랄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것이었다. 이 414캐럿 에메랄드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주얼리였다. ‘율리우스 2세’로 불리던 이 에메랄드는 16세기부터 교황의 애장품이었으나 1797년 톨렌티노 조약(Treaty of Tolentino)에 따라 교황청에서 나폴레옹에게로 이관됐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교황관을 제작해 이 에메랄드를 다시 교황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자신의 관대함과 아량을 공표하는 외교 수단으로 이용한 셈이다. 

교황관에는 3345개의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함께 2990개의 최상급 진주가 사용됐다. 2018년 일본 도쿄 미쓰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에서 열린 ‘쇼메의 세계(The Worlds of Chaumet)’ 전시를 위해 바티칸 교황청은 쇼메 측에 교황관의 복원을 의뢰했고, 전시회를 통해 공개했다.

조세핀 황후와 밀 이삭 모티프 디아뎀

밀 이삭 모티프 디아뎀(1811).

조세핀 황후는 교황관에 표현된 니토의 창의력과 기술력에 감탄해 그를 왕실 주얼러로 임명했다. 쇼메는 이를 통해 유럽 다른 왕가를 비롯해 황실에서도 성공을 이어나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세핀은 상당한 양의 쇼메 주얼리를 구입했는데, 1804년부터 1809년까지 그녀의 주얼리 소비는 162만5655프랑에 달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억5000만 원이 조금 넘지만, 당시로선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이 주얼리들은 나폴레옹 1세의 새로운 정치체제를 찬미하는 데 사용됐다. 

특별히 니토가 조세핀 황후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 밀 이삭 모티프 디아뎀이다. 150개의 밀 이삭을 모티프로 해 1811년 만들었다. 생동감이 특징인 이 디아뎀은 제국 시대에 유행하던 독특하고 대담하며 모던한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쇼메는 조세핀 황후의 요청으로 수확의 여신인 케레스와 풍요의 의미를 가진 밀 이삭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면서 다양한 주얼리를 선보였다.

쇼메의 상징, 디아뎀

쇼메의 디아뎀(왼쪽). ‘부르봉-팜므 디아뎀’(1919). [쇼메]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디아뎀은 주얼리 예술의 정수로, 당시 유럽에선 공식 행사와 유럽 황실 결혼식에서 착용하는 것이 유행이자 관례였다. 이 황실 스타일은 당대 유명한 디자이너들에게 전파됐고, 사교계에서 쇼메의 디아뎀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현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꿈과 로망의 주얼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쇼메가 제작한 디아뎀 가운데 총 137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부르봉-팜므 디아뎀’(1919)은 쇼메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현재 쇼메 메종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쇼메의 디아뎀은 쇼메 메종의 유구한 역사뿐 아니라, 권력과 화려함으로 가득하던 유럽 황실의 역사를 보여준다.

볼레로 컬렉션

쇼메 아시아 브랜드 앰배서더 송혜교가 함께한 ‘그레이스 앤드 캐릭터 (Grace and Characters)’ 캠페인. [쇼메]

2019년 쇼메는 진취적이고 개성 넘치는 여성상을 대변하는 새로운 컬렉션 ‘볼레로(Bolero)’를 선보였다. 볼레로는 라틴 음악의 한 장르로, 스페인식 발레를 위한 춤곡이다. 발레가 가진 우아한 느낌의 곡조에 정렬적인 스페인 감성이 더해져 더욱 역동적이다. 그런 볼레로가 쇼메의 볼레로 컬렉션으로 재탄생했다. 

볼레로 컬렉션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시계다. 디자인과 의미 면에서 쇼메의 전통 시계와 맥락을 공유한다. 209년 전인 1811년 쇼메는 첫 주얼리 워치를 선보였다. 양 손목에 착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페어(pair) 워치로, 각각 날짜(date)와 달(month), 시(hour)와 분(minute)을 읽을 수 있게 돼 있다. 

1811년 최초의 페어 주얼리 워치(왼쪽). 볼레로 컬렉션. [쇼메]

당시 귀족과 황실을 위한 팔찌는 항상 페어로 제작돼 양 손목에 착용할 수 있었는데, 최초의 쇼메 주얼리 워치 역시 이러한 황실 주얼리의 유산을 계승했다. 이번 볼레로 컬렉션의 주얼리 워치 또한 양손에 착용하는 페어형이다. 시계의 브레이슬릿(시곗줄) 부분과 디자인, 소재를 동일하게 제작한 브레이슬릿과 링이 페어를 이뤄 양 손목에 착용할 수 있다. 또한 유려한 굴곡으로 편안한 착용감과 선명한 가독성을 자랑한다. 

1800년대 나폴레옹과 조세핀 왕후의 황실 주얼리에서부터 오늘날 볼레로 컬렉션까지 쇼메는 3세기에 걸쳐 240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고유의 스타일은 유지하면서도 창의성과 혁신성,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시대 흐름을 따르고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명품 세계는 역사의 기록이고, 명품의 역사는 지속적인 성장사라 할 수 있다.

민은미 주얼리 콘텐트 크리에이터 mia.min1230@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