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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6단체 “상법 개정안, 주주의 재산권 침해-투기자본의 경영위협 우려”

입력 | 2020-07-19 21:30:00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 © News1


A 회사는 최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미래사업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투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모 회사의 주주인 해외 투기자본세력들이 연합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대표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송이 빗발치면서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친 틈에 외국 자본 유입은 더 늘어났고, 해외 자본이 단숨에 빠져나가면 더 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까 이들의 요구에 눈치를 보고 있다.

19일 재계 관계자는 “A회사 사례는 법무부가 지난달 11일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일”이라며 “모기업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 등 상법개정안은 결국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간섭 여지를 높여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경제단체가 17일 법무부에 상법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의견서를 내고 재고를 호소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6단체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 등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나 오히려 주주의 재산권 침해, 투기자본의 경영위협이 예상돼 규제의 합리성과 실효성 모두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이후 이달 21일까지 각계 의견을 받은 다음 자체 검토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8월말이나 9월초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할 전망이다.

법무부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상장사는 발행주식 총수의 0.01%, 비상장사는 0.1%만 가지고 있으면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에 대해 대표소송을 할 수 있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369억5000만 원(17일 기준)만 있으면 삼성전자와 자회사 7곳에 대한 소송의 길이 열린다. 중소 상장기업의 경우 100만 원대 주식 보유로 모회사와 자회사에 소송을 걸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 역시 재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감사위원은 이사회의 일원으로 회사의 주요 정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해외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주주권 행사를 할 때 자기편 사내이사 및 감사위원을 이사회에 넣으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의 입법 예고안대로라면 이사회 일원인 감사위원 중 한 명 이상을 처음부터 분리해 뽑고, 최대주주 의결권은 처음부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산해 총 3%로 제한한다.

다른 주주들도 개별 3%가 적용되지만 연합이 가능하다. 재계는 투기자본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3+3+3…’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04년 S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소버린은 보유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로 분산시킨 예가 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이번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들이 모두 경영권을 흔드는 방향으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