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 © News1
A 회사는 최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미래사업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투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모 회사의 주주인 해외 투기자본세력들이 연합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대표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송이 빗발치면서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친 틈에 외국 자본 유입은 더 늘어났고, 해외 자본이 단숨에 빠져나가면 더 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까 이들의 요구에 눈치를 보고 있다.
19일 재계 관계자는 “A회사 사례는 법무부가 지난달 11일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일”이라며 “모기업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 등 상법개정안은 결국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간섭 여지를 높여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경제단체가 17일 법무부에 상법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의견서를 내고 재고를 호소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6단체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 등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나 오히려 주주의 재산권 침해, 투기자본의 경영위협이 예상돼 규제의 합리성과 실효성 모두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무부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상장사는 발행주식 총수의 0.01%, 비상장사는 0.1%만 가지고 있으면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에 대해 대표소송을 할 수 있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369억5000만 원(17일 기준)만 있으면 삼성전자와 자회사 7곳에 대한 소송의 길이 열린다. 중소 상장기업의 경우 100만 원대 주식 보유로 모회사와 자회사에 소송을 걸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 역시 재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감사위원은 이사회의 일원으로 회사의 주요 정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해외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주주권 행사를 할 때 자기편 사내이사 및 감사위원을 이사회에 넣으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의 입법 예고안대로라면 이사회 일원인 감사위원 중 한 명 이상을 처음부터 분리해 뽑고, 최대주주 의결권은 처음부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산해 총 3%로 제한한다.
다른 주주들도 개별 3%가 적용되지만 연합이 가능하다. 재계는 투기자본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3+3+3…’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04년 S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소버린은 보유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로 분산시킨 예가 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이번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들이 모두 경영권을 흔드는 방향으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