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3인이 말하는 첩약 급여화 뇌질환 후유증,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질환에 시범 적용 1인당 1년간 한약 10일분 적용… 본회의 의결되면 10월 시작 한의계 “의원 문턱 낮출 기회” 의료계 “과학 검증 미비” 충돌
왼쪽부터 기동훈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장성인 연세의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김경호 한의사협회 부회장.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3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를 통과해 24일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에 정부 예산은 연간 5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면 10월부터 뇌혈관질환 후유증,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에 사용하는 첩약에 대해 한 사람당 1년간 첩약 10일분, 한 제에 한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첩약 한 제 보험가는 14만∼16만 원으로 이 중 절반을 건강보험에서 지급하게 된다.
반면 의료계는 17일 ‘과학적 검증 없는 첩약 급여화 반대 범의약계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하며 반발하고 있다. 급하지도 않은 첩약 급여화에 재정을 낭비하지 말고 암 환자와 희귀질환자 같은 중환자를 위한 치료비 지원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장성인 연세의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기동훈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경호 한의사협회 부회장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약치료는 질환 치료인가, 증상 치료인가.
―기동훈 교수: 질환 치료는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양한 증상을 토대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월경통은 자궁내막증 등 통증을 일으키는 다양한 질환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질환은 영상 판독 등 정확한 검사를 하지 않고 문진만으로 알아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영상 검사가 어려운 한의원에서 통증만 완화시킨다면 결국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치료시기를 놓쳐 환자에게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김경호 부회장: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30개 질환 중 한약의 유효성 근거에 따라 시범사업에 적합한 질환을 선정했다. 의과와 한의과 치료는 원인 치료와 증상 관리에서 각기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상호 보완돼야 한다.
2012년의 코크란 메타분석 결과도 한약치료가 통증 완화와 임신율을 높이고 부작용은 양약에 비해 유의하게 적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미국생식의학회는 자궁내막증에 한약치료를 권고한 바 있다.
한의원서도 처방전 발행이 가능한가.
―기동훈 교수: 개인맞춤형의 한약처방은 정해진 표준처방이 없다. 이는 치료에 기준이 없는 것과 같다. 같은 질환에 한의원마다 다른 약재들이 처방된다.
처방전이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되는 병원과 달리 한의원은 ‘비방’이라는 명목하에 처방전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한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이는 의료계가 부작용을 통제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일례로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의 위험이 있는 환자는 평소에 ‘와파린’이라는 피가 굳는 것을 방지해주는 약을 복용하는데 한약을 복용하고 위장관 출혈로 응급실을 찾은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복용한 한약의 성분을 알지 못해 응급처치가 늦어지고 진단에 혼란을 겪었다.
―김경호 부회장: 첩약의 가장 큰 장점은 맞춤 처방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일정 수준의 첩약급여 표준화를 담보하기 위해 질환별로 다양한 기준처방을 제시했다. 한의사는 기준처방을 기초로 방제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조합의 맞춤 처방을 환자에게 급여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때 환자의 알 권리를 위해 조제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한다. 급여로 처방되는 첩약은 약재구성(성분)을 표시해 환자에게 제공하며 원산지까지 공개하도록 했다. 현재 천연물 의약품 원료의 원산지 공개는 권고사항으로 의무사항은 아니다.
소분하고 남은 한약재 관리는 어떻게.
―장성인 교수: 병원에 들어오는 주사제 등 의약품은 제약사가 제조년 번호, 바코드 등을 표시한다. 이는 의약품 관리 부주의로 생길 수 있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목적이 있다. 모든 약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밝히고 역학조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정량을 제조사가 보관하기도 한다.
의료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약제 관리 시스템, 의약분업 등 일어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들을 마련해놓고 있다. 한의원은 소분하고 남은 다량의 약재를 보관하는 방법 등 신뢰할 수 있는 약재 관리 시스템과 위생 관리·감독 시스템이 없어 한의원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상황을 한의사 개인에게만 의존해야 한다.
―김경호 부회장: 시범사업을 준비하면서 첩약의 규격화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동일질환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제기술이 활용되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질환별 기준처방을 제시했다. 사용하는 약재는 식약처의 h-GMP를 통과한 규격품 한약재를 사용해야만 요양급여로 인정된다. 심층변증과 방제기술 단계에서 체크리스트 등 기록을 통해 진단 과정의 표준화를 유도하고 환자의 급여일수와 하루 중 처방횟수를 제한했다. 급여설계안대로 첩약 처방과 조제 단계가 충실히 이뤄지는지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첩약진료 안에 포함된 의료행위의 특성상 방제·법제·조제·탕전 과정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처방하는 약재와 조제하는 약재의 동일성을 담보할 수가 없어서 제조 의약품과 같은 수준의 분업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의료 사고 시 책임 소재를 감별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