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9월 13일
플래시백
새로운 한 주일의 업무가 시작된 1921년 9월 12일 월요일 오전 10시 20분경 전기수리공 차림의 한 사람이 조선총독부 정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때 총독부는 광화문이 아니라 남산 기슭 왜성대에 있었죠. 그전 통감부가 쓰던 건물이었습니다. 이 수리공은 2층으로 올라가 비서과에 폭탄을 던진 뒤 곧이어 회계과장실 앞 응접실에도 폭탄을 던져 넣었죠.비서과 인사계실에 날아든 폭탄은 직원 얼굴에 맞고 떨어졌지만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직원은 누가 장난으로 뭔가를 던진 줄 알았죠. 옆자리 직원이 “이거, 폭탄이다!”라고 소리쳐 소동이 나자마자 회계과장실 앞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폭탄의 굉음과 함께 마룻바닥에 15~18㎝의 구멍이 파이고 파편이 사방 벽과 아래층으로 튀면서 유리창들이 깨지고 아래층 책상과 의자가 파편으로 벌집이 되다시피 했죠.
왼쪽은 폭탄이 터져 큰 구멍이 파인 회계과장실 앞 마룻바닥. 오른쪽은 회계과장실 문 앞에서 피습현장을 살펴보는 총독부 직원. 출처=매일신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직원들은 우왕좌왕하고 순사들이 뛰어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사이에 수리공은 “아부나이! 아부나이!”라고 외치며 뒷문을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아부나이(危ない)’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마침 출근한 총독부 2인자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이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검사도 현장에 출동해 조사를 했죠. 추가 언론 보도는 차단했고요. 경비가 삼엄했던 총독부가 무방비로 폭탄 공격을 당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동아일보 9월 13일자 3면 기사 제목이 ‘총독부에 폭발탄!’이었죠.
이 수리공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태원의 동생 집에서 하룻밤 숨어 있다가 13일 일본인으로 변장하고 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빠져나갔죠. 총독부가 피습당한 날 저녁 총독부 경찰부장이 본정경찰서장 종로경찰서장 동대문경찰서장 서대문경찰서장 등을 불러 모아 3시간이나 회의를 했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13, 14일에는 평안남도 경찰부에서도 피습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수리공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간 뒤였죠. 이 사람의 행적은 잠입부터 거사, 탈출까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모습. 왼쪽은 정문, 오른쪽은 후문으로 보인다. 어느 곳이나 초소가 있고 경비가 삼엄하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동아일보 9월 14일자 3면에 ‘시내 각 경찰서가 (범인 추적) 활동은 계속 하는 모양이나 자세한 사실은 아직 보도할 수 없더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결국 1921년이 다 지나가도록 범인은 오리무중이었죠. 일제 경찰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비밀회의를 거듭하고 눈에 불을 켠 채 범인을 찾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폭탄범이었던 셈이죠. 그래서였는지 일제 경찰은 보도를 차단하기만 했습니다.
수리공의 정체가 드러난 때는 이듬해 3월이었습니다. 이름은 김익상, 나이 28세, 의열단 단원이었죠.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했으나 실패하고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그가 벌인 의열투쟁의 전모가 밝혀진 것입니다. 김익상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조선 독립은 2000만 민족 중 1600만 이상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때 선두에서 희생해야 한다’고 하자 “우리보다 먼저 내가 피를 흘리자”라며 총독부 폭파 거사에 자원했습니다. 김익상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나카 저격사건을 다룰 때 소개하겠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總督府(총독부)에 爆發彈(폭발탄)！昨日(작일) 上午(상오) 十時(10시) 二十分(20분)에
춍독부 비서과와 회계과 두 곳에
폭발탄 두 개를 던지어 크게 소동
會計課(회계과)의 一個(일개)는 爆發(폭발)
작 십이일 상오 열 시 이십 분에 조션총독부에 폭발탄 두 개를 던지엇는대 비서과(秘書課) 분실(分室) 인사계실(人事係室)에 던진 한 개는 영목속(鈴木屬)의 빰을 스치고 책상 우에 떠러저셔 폭발되지 아니하얏스며 다시 회계과댱실(會計課長室)에 던진 폭탄 한 개는 류리창에 마저서 즉시 폭발되야 류리창은 산々히 부서지고 마루에 떠러저서 주먹 하나 드러가리만한 구녁을 뚤엇는대 범인은 즉시 종젹을 감츄엇슴으로 방금 엄탐 즁이오 폭발하는 소래가 돌연히 이러나자 춍독부 안은 물끌틋하야 일장의 수라장을 이루엇다더라.
投彈(투탄) 當時(당시)의 光景(광경)
두 번재 폭발탄을 던진 후에야
비로소 폭탄인 쥴을 알고 야단
警務當局(경무당국)의 秘密會議(비밀회의)
이제 폭탄을 던지던 당시의 광경을 듯건대 총독부 본관(本舘) 이층(2층) 비서과(秘書課) 압 복도에 홀연히 나타난 인물은 열 시 이십 분에 창을 넘어 뎨일착으로 폭탄 비서과(秘書課) 출납려비계실(出納旅費係室)에 던지고 그대로 복도로 조차 외사과댱실(外事課長室)의 압 모양을 살핀 후 회계과댱실(會計課長室) 압 복도로 와셔 응접하기 위하야 노아둔 둥근 탁상 잇는 곳에서 뎨이차로 폭탄을 던지고 그대로 그곳 층계를 내려와서 자최를 감춘 모양인대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집무하고 잇든 총독부속 령목우후(鈴木友厚) 씨의 왼편 빰을 맛고 책상 우에 떠러젓다가 다시 데굴데굴 굴너서 떠러젓스나 폭발은 하지 아니하얏는대 이 령목 씨는 누가 작란으로 무엇을 던진 것인 줄 알고 복도로 나와서 급사 한 명을 불너 무러본즉 앗가 외사과댱실을 향하야 가든 사람의 소위이라 함으로 별로 이상히도 알지 아니하고 다시 도라온즉 고 엽헤서 사무 보든 사람이 앗가 떠러진 덩어리를 들고 이것은 폭발탄이라고 크게 소동할 때에 뎨이차의 폭탄의 터지는 소래가 벼락가치 낫는대 이 사이가 겨우 몃 분 동안 밧게 되지 못한다.
당시 폭탄이 터지든 곳에 붓터 잇는 회계과댱실에는 국산(菊山) 과댱은 잇지 아니하고 아래층 용도과원 오륙 명도 모다 볼일이 다른데 잇서々 사무를 보고 잇지 아니하얏기 때문에 한 사람도 부상치 아니 하얏스며 폭탄 터지는 소래가 들리고 폭탄인 줄 안 근처 사람들은 크게 소동하야 범인의 종적을 쫏고자 하얏스나 혼잡한 틈을 타서 그림자를 숨긴 것이라. 목하 당국에서는 극력 범인 톄포에 노력 중인 바 ○○○○○○○○○○○이 소동 중에 등텽하얏든 수야정무총감(水野政務總監)은 곳 경무국댱실에 잇든 청목서무부댱(春木庶務部長) 환산사무관(丸山事務官) 산구고등경찰과댱(山口高等警察課長) 등을 불너서 당시의 상황을 듯는 동시에 무슨 일을 머리를 모와 비밀히 협의하얏다더라.
檢事(검사)의 現場臨檢(현장임검)
수야검사가 급히 츌장검사
폭탄의 굉々한 푹발소래가 돌연히 왜성대를 울니게 되매 총독부 안은 가마 속의 물과 가치 부글々々 끌케 되는 동시에 경성디방법원 검사국에서는 수야(水野) 검사가 즉시 현장에 출장하야 림검을 하얏스며 경긔도지사 공등영일(工藤英一) 씨와 쳔엽(千葉) 경찰부댱도 즉시 현장에 나타나서 검사와 가치 림검을 하얏는대 이밧게 사실에 대하야는 보도할 자유가 업더라.
현대문
총독부에 폭탄!어제 오전 10시 20분에
총독부 비서과와 회계과 2곳에
폭탄 2개를 던져 크게 소동
회계과의 1개는 폭발
어제 12일 오전 10시 20분에 조선총독부에 폭탄 2개를 던졌는데 비서과 분실 인사계실에 던진 한 개는 스즈키 속(屬‧하급 문관)의 뺨을 스치고 책상 위에 떨어져서 터지지 않았으며 다시 회계과장실에 던진 폭탄 한 개는 유리창에 맞아 즉시 폭발해 유리창은 산산히 부서지고 마루에 떨어져서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었다. 범인은 즉시 종적을 감추었으므로 즉시 탐문 중이고 폭발하는 소리가 갑자기 일어나자 총독부 안은 물 끓듯 한바탕 수라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투탄 당시의 광경
두 번째 폭탄을 던진 뒤에야
비로소 폭탄인 줄 알고 야단
경무당국의 비밀회의
이제 폭탄을 던지던 당시의 광경을 재구성하면 총독부 본관 2층 비서과 앞 복도에 홀연히 나타난 인물은 10시 20분에 창을 넘어 제1착으로 폭탄을 비서과 출납여비계실에 던지고 그대로 복도를 향해 외사과장실의 앞 상황을 살핀 뒤 회계과장실 앞 복도로 와서 응접하기 위하여 놓아둔 둥근 탁자 있는 곳에서 제2차로 폭탄을 던지고 그대로 그곳 층계를 내려가서 자취를 감춘 모양이다.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업무를 보고 있던 총독부 속 스즈키 도모아쓰 씨의 왼쪽 뺨을 맞고 책상 위에 떨어졌다가 다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졌으나 터지지는 않았다. 이 스즈키 씨는 누가 장난으로 무엇을 던진 것인 줄 알고 복도로 나와서 급사 한 명을 불러 물어보니 아까 외사과장실을 향해 가던 사람의 짓이라 하니까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 그 옆에서 업무를 보던 사람이 아까 떨어진 덩어리를 들고 이것은 폭탄이라고 크게 소동이 났을 때 제2차 폭탄 터지는 소리가 벼락같이 났고 그 간격이 겨우 몇 분밖에 되지 않았다.
범인은 제1차로 폭탄을 던지고 곧 회계과장실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제2차의 폭탄을 던지고 그대로 층계로 내려가서 어디로 도망갔다. 제2차의 폭탄이 터진 현장에는 마룻바닥에 넓이가 15~18㎝이나 되는 구멍이 뚫리고 폭탄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유리창 2, 3장을 깨뜨리고 그 아래층 용도계원이 쓰던 책상과 의자에는 탄환 조각이 들이박혀 큰 구멍이 10여 개나 뚫리어 현장의 광경은 처참했다.
당시 폭탄이 터지던 곳에 붙어 있는 회계과장실에는 기쿠야마 과장은 있지 않았고 아래층 용도과원 5, 6명도 모두 볼 일이 다른 곳에 있어서 사무를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도 부상당하지 않았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폭탄인 줄 안 근처 사람들은 크게 놀라서 범인의 종적을 쫓으려고 하였으나 혼잡한 틈을 타서 그림자를 숨긴 것이다. 지금 당국에서는 범인 체포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이 소동 중에 출근했던 미즈노 정무총감은 즉각 경무국장실에 있던 하루키 서무부장, 마루야마 사무관, 야마구치 고등경찰과장 등을 불러서 당시의 상황을 듣는 동시에 무슨 일을 머리를 모아 비밀히 협의하였다고 한다.
검사의 현장 조사
미즈노 검사가 급히 출장 조사
폭탄의 요란한 폭발소리가 갑자기 왜성대를 울리자 총독부 안은 가마 속의 물처럼 부글부글 끓게 되는 동시에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는 미즈노 검사가 즉시 현장에 출동하여 조사를 하였으며 경기도지사 구도 에이이치 씨와 치바 경찰부장도 즉시 현장에 나타나서 검사와 같이 조사를 하였다. 이 밖의 사실에 대해서는 보도할 자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