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 이목원 미술감독 인터뷰

영화 ‘반도’의 주인공 정석(강동원)은 돈이 든 트럭을 빼내기 위해 반도에 들어가겠다는 매형 철민(김도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한 문장은 반도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함축한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 땅. 4년 동안 방치돼 폐허가 된 땅. 발을 들이는 것조차 미친 짓으로 간주되지만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반도’의 시작이었다.

반도의 시작은 상상이었다. 인류와 문명이 사라진 땅은 현존하지 않기에 ‘부산행 이후 4년 간 방치된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를 떠올렸다. 원전 사고로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된 후쿠시마, 체르노빌 일대를 ‘구글어스’로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흙으로 덮인 도로, 물에 잠긴 지하 주차장, 물 위를 떠다니는 한강 구조물들의 이미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반도를 시작할 때 운전을 하던 중 도심의 버스정류장에 풀꽃이 핀 걸 봤어요.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자연은 바로 자신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반도에서도 인간의 통제가 사라져 완전히 ‘방치’된 서울을 자연이 변형한다는 원칙 하에 디자인했어요.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가 그대로 휩쓸고 지나갔을 거라고 설정했죠”
기존 장소를 사용할 수 있는 신(Scene·장면)은 거의 없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신의 배경인 인천항 주차장, 자동차 추격신이 벌어지는 서울 도심의 도로 등은 모두 세트로 제작됐다. 대전의 1983㎡(600평) 규모 세트장에 기본 도로를 깔고 장면마다 변화를 주며 촬영했다.
“세트장에 아스팔트 도로를 시공한 뒤 방치됐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수작업으로 도로 균열을 하나하나 조각했습니다. 신이 바뀔 때마다 도로에 풀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팀이 농부들이 사용하는 엉덩이 받침 의자를 준비해 풀을 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이 감독의 영화미술은 상상과 실재를 넘나든다. ‘신과함께: 인과 연’ ‘신과함께: 죄와 벌’ 에서는 사후 세계를 재현했고, ‘부산행’에서는 실제 KTX를 옮겨온 것 같은 세트를 만들어냈다. 진짜를 더 진짜처럼, 가상도 실재처럼 그리는 이 감독이 안목을 키우기 위해 매일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상 속 모든 순간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는 것.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