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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동영상 올리다 ‘먹통’ 일쑤… 구글-MS 안쓸수 없어요”

입력 | 2020-07-22 03:00:00

[코로나19 사태/코로나가 바꾼 학교]<下> IT 강국의 참담한 민낯




올 4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원격수업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이 전면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학습관리시스템(LMS)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당수 학교는 마땅한 서비스를 찾지 못해 구글 등 해외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모 씨(44·여)의 휴대전화 첫 화면을 채운 애플리케이션(앱)은 모두 교육용이다. 초등학교 1, 4학년 자녀가 다니는 학교 관련 앱들로, 무려 9개나 된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 등 전체 공지를 내릴 때 쓰는 앱과 4학년 담임교사가 알림장을 보낼 때 쓰는 앱, 둘째 아이 알림장과 출석 체크에 필요한 앱, 여기에 온라인 개학 후 내려받은 EBS 앱과 e학습터 링크, 네이버 밴드 앱까지…. 추가로 매일 아침 두 아이가 해야 하는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 링크 두 개도 메인 화면에 뒀다.

“아침마다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앱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지만 기능은 더 문제예요. 뭐 하나 찾아 들어가려면 앱 안에서 몇 번을 눌러야 원하는 기능에 도달하고요. 파일도 바로바로 안 열려서 다운로드해야 하고…. 영상 재생이 버벅거리는 건 약과예요. 앱이 튕겨서(강제 로그아웃) 올리던 숙제가 다 날아간 적도 있다니까요.”

○ ‘누가 한국을 IT 강국이라고 말했나’

한국의 정보기술(IT) 역량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교육 분야 사정은 다르다. 원격수업용 플랫폼, 교육용 소프트웨어 등 ‘에듀테크’ 분야의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다. 한국의 강점으로 꼽히는 IT인프라 구축조차 학교는 외딴섬이다.

“요즘 세상에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이 있냐고요? 학교는 안 됩니다.” 서울 A고교 교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그간 보안을 이유로 공유기 설치가 금지됐고 무선송수신장치(AP)를 설치해야만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AP가 설치된 곳이 교내 일부에 불과하다 보니 교무실 등 특정 몇몇 장소를 벗어나면 무선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 크고 낡은 노트북을 들고 교실에 한 가닥 뻗어 나온 유선 인터넷 공급선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교사들의 모습은 현재 국내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교사들이 원격수업 자료 제작에 쓸 소프트웨어도 빈약하다. 예컨대 교사가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하려면 각각에 맞는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e학습터는 300MB 이하의 영상만 삽입할 수 있거든요. 수업 동영상 만든 걸 올리려고 하면 용량 초과여서 안 돼요. 그럼 인코딩(파일 변환)을 해서 용량을 줄여야 하는데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죠. 포털의 무료 인코딩 프로그램을 쓰면 2, 3시간씩 걸리는데 끝나고 나면 오후 9시가 넘어요. 그러니 교사들이 그냥 EBS 수업 링크를 걸고 말죠.”(고교 교사 이모 씨)

○ 구글, MS 플랫폼에 몰리는 학교들

코로나19 이후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 모두 교육서비스를 시작부터 끝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습관리시스템(LMS·Learning Management System) 구축이 절실해졌다. 출석부터 수업, 토론, 과제 수행, 평가 등 각종 학사요소가 유기적이고 지속적인 형태로 관리되는, 간편하고 효율성 높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는 일부 기능만 제공되는 단절적 서비스만 난립하는 상황이다. 2013년 대기업은 공공 소프트웨어사업 참여를 제한하도록 하는 법이 나오면서 IT 대기업들은 교육용 서비스 개발에 사실상 손을 놨다. 정부도 교육용 IT 분야 투자를 등한시했다. 그 결과 교육부가 주축이 돼 개발한 e학습터, 위두랑 등은 “기능이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 주모 씨는 “그동안 하던 수업의 틀이 원격수업이라는 플랫폼으로 들어가지지 않는 게 제일 답답하다”며 “특히 초등 과정에서 중요한 협동학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국내에 이를 뒷받침할 프로그램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시도교육청과 학교는 EBS나 e학습터 등 공공 프로그램을 버리고 구글 클래스룸, 줌(ZOOM) 등 해외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서울 B고교는 올 4월 아르바이트 대학생 여러 명을 고용해 1000명이 넘는 전교생 개개인에게 부여할 구글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학교 수업에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학생과 교사 모두 구글 클래스룸 프로그램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용량 제한 없이 수업 동영상을 올릴 수 있으면서 화상회의(구글 Meet) 기능을 이용해 쌍방향 수업도 할 수 있는 건 구글뿐이었다. 이 학교 교감은 “처음엔 선생님들이 ‘왜 EBS 두고 어려운 구글을 쓰냐’는 불만이 많았다”며 “하지만 EBS 플랫폼을 쓰는 학교들이 갈수록 고생하는 걸 보고 지금은 다들 잘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구글 클래스룸에서는 수업은 물론 과제 배포까지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마치 교사가 교실 복도를 거닐며 학생의 책상 위를 보듯 이름을 클릭하면 학생이 입력 중인 화면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여럿이 동시 접속해 모둠과제를 수행할 수도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서울과 부산은 아예 교육청이 발 벗고 나서 구글 클래스룸 교사 연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IT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민감한 학생 데이터가 해외 서버에 저장되는 것인 데다 문제가 생겨도 이를 해결할 주도권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와 학생들이 구글 플랫폼과 생태계에 익숙해지면 향후 국내 IT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번 시장에 갇히게 되면(lock-in) 비슷한 국산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이용자들이 이동하긴 매우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소정·유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