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의 간담회 현안 중 하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규제였다. 기획재정부 제공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지난해 본격 시행된 화평법 개정안의 골자는 연간 1t 이상의 기존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려면 그 명칭과 총량을 사전 등록해야 하며, 미등록 화학물질은 제조, 판매,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규제 대상이 광범위하고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도 강도가 세 관련 업계로부터 현실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화학물질 1개 등록에 1억 원이 든다며 부담을 호소해 왔다.
대통령 직속 기구 중에 규제개혁위원회가 있다. 정부의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고 사전 정비해 시행 시 문제가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기구다. 새로운 규제는 우선 위원회의 서면 예비 심사를 거친다. 이 서면 심사에서 ‘중요’ 규제로 분류되는 것들만 본심사를 받는다. ‘비중요’ 규제로 분류되면 본심사 없이 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르면 중요 규제의 판단 기준은 △대상 국민이 연간 100만 명 이상 △시행에 따른 연간 비용이 100억 원 이상 △국제 기준에 비추어 규제 정도가 과도한 경우 등이다. 화평법 규제는 위원회가 보기에 이 중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는 일례에 불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정부 입법으로 도입된 규제 3151건 중 96.5%인 3041건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비중요 규제로 분류됐다고 21일 밝혔다. 사실상 위원회가 정부 규제의 심판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오락가락 심사도 다반사다. 전경련에 따르면 대주주 적격성을 강화하는 취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법률 개정안은 처음에 비중요로 분류됐다가 금융업계 반발이 거세자 다시 중요로 분류됐고, 결국 본심사에서 철회됐다.
규제개혁위원회는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발족한 기구다. 수차례 정부가 바뀌는 와중에도 2010년 기준 중요 규제 비중이 31%에 달했던 위원회가 지난해 2.3%만 중요 규제로 본심사를 열었다. 어떤 정부 못지않게 규제 개혁, 혁신을 외치고 있는 이 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회의 존재감이 미미해진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