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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보내준 독자들… 시티팝 재조명… 창작 동력 잃을때마다 힘이 돼준 은인”

입력 | 2020-07-22 03:00:00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내 삶 속 동아일보]
〈15〉싱어송라이터 김현철




동아일보에 실린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든 김현철은 “수직적으로 굳어 있던 나의 음악관이 동아일보 기사를 보며 수평적으로, 동시대를 두루 살피는 방향으로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춘천 가는 기차’의 싱어송라이터 김현철(51)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5월이었다. 서울 강남구의 음반사 사무실에서 그는 믹스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워 들고 기자와 마주 앉았다. 그가 2006년 9집 발표 이후 6년간이나 후속작을 못 내놓던 때다. 당시 그의 변명은 “가사가 도통 안 써져서”였다.

장필순부터 이소라, 아이유에게까지 노랫말과 곡을 준 김현철의 샘이 말랐다니…. 그런 사정을 담은 본보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김현철 사무실에는 프로와 아마추어 작사가들의 가사가 쇄도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김현철은 “당시 100건 넘게 가사가 답지해 정말 놀랐다”고 했다. 아예 자신이 쓴 시집을 통째로 발송한 이도 있었다고. 그는 “좋은 내용들이 많아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얀 원고지는 쉽사리 메워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이 더 흘렀다.

무슨 조화일까. 이번엔 다른 누구도 아닌 김현철의 가슴에서 글과 음표의 물길이 솟구쳤다. 창작의 샘이 무려 12년 만에 풀린 것. 이 역시 공교롭게도 본보를 통해서였다. 도화선이 된 것은 2017년 8월 본보 문화면의 ‘쿨 하게 돌아왔네… 그 시절 ‘시티팝’’ 기사. 그중에서 김현철의 1989년 데뷔 음반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 한국 시티팝의 원류로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끄럽지만 저는 시티팝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요. 주변 음악인들이 시티팝과 저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예요. 젊은 음악가들과 기사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게 되고 ‘내 스타일 그대로 다시 인정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죠.”

2018년 한국 대중음악사의 페이지 속에서 바래가던 음악인 김현철은 끝내 스스로 되살아났다. 10년 전 음악을 관두며 처분한 악기를 하나둘 다시 사 모으고 작사, 작곡, 편곡을 다시 시작했다. 결실은 지난해 11월 열렸다. 무려 13년 만의 새 정규앨범, 10집 ‘돛’이다.

“돌아보니 가사가 안 떠올라 음악을 못 만들겠다는 생각은 헛것이었어요. 음악이 다시 재밌어지니 가사는 자연히 풀리더군요.”

김현철은 “그때 동아일보 기사의 정보들이 묘하게도 내가 창작의 문을 다시 여는 데 필요한 것들과 꼭 닿아 있었다”고 했다.

최근 배우 공효진이 주연한 믹스커피 광고에 김현철 1집 첫 곡 ‘오랜만에’가 흐른다. 31년 만에 김현철이 다시 편곡하고 부른 것. 약관의 김현철을 50대 김현철이 재해석했다. 13일 디지털 싱글로 나왔다. 폴킴이 참여한 신곡 ‘선(線)’까지 묶었다. 이르면 올해 낼 김현철 11집의 서막이다. ‘샘’이 제대로 터졌다.

그는 “CD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가 LP레코드와 턴테이블을 버렸지만 이제와 다시 찾듯, 아날로그의 온기는 사람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첨단 매체가 쏟아져도 인쇄된 기사만이 가질 수 있는 파워를 저는 믿습니다. 특히나 문화 기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결코 인공지능이 대신 써줄 수 없죠. 문화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문화 기사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쓰는 글이잖아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