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내 삶 속 동아일보] 〈15〉싱어송라이터 김현철
동아일보에 실린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든 김현철은 “수직적으로 굳어 있던 나의 음악관이 동아일보 기사를 보며 수평적으로, 동시대를 두루 살피는 방향으로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장필순부터 이소라, 아이유에게까지 노랫말과 곡을 준 김현철의 샘이 말랐다니…. 그런 사정을 담은 본보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김현철 사무실에는 프로와 아마추어 작사가들의 가사가 쇄도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김현철은 “당시 100건 넘게 가사가 답지해 정말 놀랐다”고 했다. 아예 자신이 쓴 시집을 통째로 발송한 이도 있었다고. 그는 “좋은 내용들이 많아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얀 원고지는 쉽사리 메워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이 더 흘렀다.
“부끄럽지만 저는 시티팝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요. 주변 음악인들이 시티팝과 저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예요. 젊은 음악가들과 기사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게 되고 ‘내 스타일 그대로 다시 인정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죠.”
2018년 한국 대중음악사의 페이지 속에서 바래가던 음악인 김현철은 끝내 스스로 되살아났다. 10년 전 음악을 관두며 처분한 악기를 하나둘 다시 사 모으고 작사, 작곡, 편곡을 다시 시작했다. 결실은 지난해 11월 열렸다. 무려 13년 만의 새 정규앨범, 10집 ‘돛’이다.
“돌아보니 가사가 안 떠올라 음악을 못 만들겠다는 생각은 헛것이었어요. 음악이 다시 재밌어지니 가사는 자연히 풀리더군요.”
김현철은 “그때 동아일보 기사의 정보들이 묘하게도 내가 창작의 문을 다시 여는 데 필요한 것들과 꼭 닿아 있었다”고 했다.
그는 “CD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가 LP레코드와 턴테이블을 버렸지만 이제와 다시 찾듯, 아날로그의 온기는 사람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첨단 매체가 쏟아져도 인쇄된 기사만이 가질 수 있는 파워를 저는 믿습니다. 특히나 문화 기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결코 인공지능이 대신 써줄 수 없죠. 문화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문화 기사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쓰는 글이잖아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