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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부, 휴스턴 中 총영사관 폐쇄 명령…中 보복 조치 가능성도

입력 | 2020-07-22 21:00:00


미국 국무부가 텍사스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명령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격분한 중국이 후베이성 우한(武漢)의 미 영사관을 폐쇄하는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남중국해 영유권 등 다양한 사안에서 대립 중인 양국의 갈등이 외교 전면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 美 “지식재산권·개인정보 보호” vs 中 “국제법 위반”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현지 시각) 이메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미국인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폐쇄 명령을 내렸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미국은 불공정 무역 관행, 미 일자리 갈취 등 중국의 사악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중국이 미 주권을 침해하고 미국민을 위협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 수도 워싱턴에 대사관을 두고 있고 휴스턴,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5개 대도시에는 총영사관을 뒀다. 특히 휴스턴 영사관은 1979년 양국 수교 후 미국에 처음 설립된 중국 총영사관이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휴스턴크로니클 등 현지 매체는 21일 오후 8시경 휴스턴 영사관 내 뜰에서 문서 등을 불태우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연기와 종이가 타는 냄새가 났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도착했으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사관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연신 통 안에 서류와 물건을 던져 넣는 듯한 행동도 목격됐다. 갑작스런 미국의 폐쇄 요구에 중국 측이 기밀문서를 급히 소각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 영사관에서는 2017년 8월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앞서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21일 미국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모든 활동과 행사를 향후 72시간(24일 오후 4시) 안에 중단하고 모두 떠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도발이며 국제법과 양국의 영사 협정을 심각히 위반했다. 즉각 철회하라”고 반발했다. 또 “미국은 미국 내 중국 외교 인력을 괴롭히고 중국인 학생을 위협했다. 반중 혐오 정서를 부추겨 대사관 직원이 폭탄 및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의 속내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 관영언론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트위터에 “영사관 폐쇄와 사흘 내 철수 요구는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 美 우한 영사관 폐쇄·中 입국조건 강화도 원인

미국이 상대국과의 외교 관계 악화로 영사관 철수를 요구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7월 러시아가 미 외교관을 추방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워싱턴 대사관 부속건물, 샌프란시스코 영사관, 뉴욕 영사관 부속건물 3곳에 대한 폐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영사관 폐쇄는 양국 관계의 파열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외교 공관의 폐쇄가 미중관계의 붕괴가 심각하게 가속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미 국무부 측은 미 지식재산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들었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올해 1월 코로나19 창궐을 이유로 우한 소재 미 영사관을 일시 폐쇄했을 때부터 양국 외교 갈등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우한 영사관 폐쇄 당시 미국 측에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다고 보도했다. 이를 마음깊이 담아뒀던 중국은 최근 미국이 외교관을 다시 중국에 파견하려 하자 미 외교관에게도 타국 일반인과 똑같이 강제 격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이 코로나19 검사를 이유로 미 외교관의 DNA를 채취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즉 중국은 미국에 앙심을 품고 있고, 미국 역시 우한 영사관 복귀가 제대로 되지 않자 휴스턴 영사관 폐쇄로 대응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양측 갈등도 상당하다. 21일 미 법무부는 백신 개발에 관한 미 기업 및 연구소 정보를 10여 년 간 해킹해 온 혐의로 중국인 2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첨단기술·제약 관련 기업을 해킹하는 한편 미국과 홍콩 등지에서 활약하는 반체제 인권운동가들도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미 법무부는 표적이 된 기업 및 연구소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휴스턴에는 코로나19 백신에 관한 중요 연구소가 여럿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중 한 곳에 살아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공해 백신 개발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