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은 ‘행정수도 완성’이 아니라 遷都다 근래 수도 이전은 주로 독재국가들 북한처럼 遺訓통치하겠다면 똘똘한 아파트 팔아 모범 보이길
김순덕 대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위헌 결정이 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행정수도 블랙홀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일 터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 당권주자들은 쌍수를 들고 나섰다.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의 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총리 시절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을 놓고 “국민 다수가 동의할지 의문”이라던 이낙연 의원도 달라졌다. “16년 전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이상하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이번엔 전면적 행정수도 이전을 목표로 여야가 협의해야 한다고 환영했다.
관습헌법이라는 논리가 마음에 안 든대도 국회 이전은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 범여권 190석을 넘나드는 집권세력으로선 개헌도 어렵지 않을 거다. 헌법소원이 제기돼도 겁날 것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헌법재판관 8명 중 6명이 특정 세력 출신이다. 문 정권 임기 내내 그리고 2022년 대선까지도, 수도 이전은 되면 좋고 안 되면 계속 통합당을 괴롭힐 수 있어 좋은 민주당의 꽃놀이패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현실이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 명운을 좌우하는 수도 이전을 자칭 진보개혁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건 비극이다. 진정 국가균형발전을 바랐다면 수도 이전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뉴욕은 미국의 수도가 아니어도 세계적 도시로 발전했다고 말하지 말라. 워싱턴DC는 1800년에 수도가 됐다. 호주의 캔버라는 1913년, 터키의 앙카라는 1923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는 1960년 수도로 등극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시드니, 이스탄불, 상파울루를 더 좋아한다. 왕조가 바뀐 것도 아니고 수도가 바뀌었다고 주류세력 교체와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브라질에선 수도가 국민과 괴리되는 바람에 부패를 감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그래서 1999년 수도 이전을 완료한 통일독일 말고 근래 천도를 한 나라는 미얀마(2005년) 카자흐스탄(1998년) 나이지리아(1991년)처럼 주로 저개발 독재국가들이다. 한국이 여기 끼었다가 정체성을 의심받을까 걱정스럽다. 말레이시아는 2002년 푸트라자야로 수도를 옮기며 2020년까지 선진국 도약을 다짐했지만 아직도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와서 세종시를 도로 무를 수도 없다는 건 두고두고 한스러울 듯하다. 공무원들 출장지의 60%가 국회이므로 차라리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면 국정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 서울 등 수도권 지역구 의원을 빼곤 여기 집이 있는 의원과 공무원들은 반드시 팔고 온 식구가 이사하도록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집권세력의 진정성 없이는 단언컨대 부동산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제발 노무현 정부의 수도 이전을 완수한다는 투지 따위는 불태우지 말기 바란다. 한반도에서 유훈(遺訓) 통치는 북한만으로 족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