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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휴스턴 中 총영사관에 폐쇄 명령…대선 위한 드라이브?

입력 | 2020-07-23 16:35:00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미국의 폐쇄 명령에 따라 문을 닫게 된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은 오랫동안 중국의 미국 내 스파이 활동의 본거지 역할을 해온 것으로 미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미국이 외교관계의 타격을 감수하고 총영사관 폐쇄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그동안 은밀히 진행돼온 중국의 첩보전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본격적인 선언이라는 것. 반면 일각에서는 대선을 100여 일 앞두고 수세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권자들의 반중(反中) 정서를 노리고 대중 강경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22일(현지 시간) NBC방송에 따르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 조치는 수년 간에 걸쳐 미 연방수사국(FBI)이 진행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 영사관이 미국의 첨단 기술과 의료 분야 연구자료를 훔쳐내고 석유·천연가스 산업에 침투하는 스파이 활동의 핵심 기지였다는 것. 중국 요원들의 첩보전을 조율하며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해왔으며, 이런 까닭에 건물 안팎에는 미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보안장치도 견고하게 설치돼 있다고 한다.

중국이 휴스턴에 있는 세계적 의료센터인 텍사스주립대의 MD앤더슨 암센터 내의 연구 자료들을 빼내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FBI가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NBC방송은 전했다. 2019년 4월에는 이 암센터에서 의학 연구자료를 빼내려는 시도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중국계 교수 등 연구진 3명이 겨나는 일도 있었다.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해 보도한 7쪽 분량의 법률자료에도 이런 내용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에 따르면 휴스턴 총영사관은 의료 연구자료의 탈취 시도 외에 50명이 넘는 연구자들의 채용 시도뿐 아니라 중국 정부가 송환을 원하는 미국 내 반(反)체제 중국인 인사들에 대한 압박 활동 등도 진행했다. NYT 등에 따르면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이 미국 내 연구결과 탈취의 거점으로 불순한 행동에 관여한 범죄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첩보전은 그 강도와 빈도가 계속 높아져왔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최근 워싱턴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10시간에 한 번 꼴로 중국 관련 새로운 방첩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며 “미국의 기술을 훔치고 미국을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하는 중국의 시도는 너무나 빨리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이런 시도는 특히 최근 6개월 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는 시도와 연관돼 있다고 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그 중심에 휴스턴 총영사관이 있었다는 게 미 정부의 판단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현역 군인이 신분을 속이고 미국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발각된 사례도 나왔다. 탕쥐안(唐娟)으로 알려진 인민해방군 공군 소속의 이 여성 연구원은 신분을 속이고 미국에 입국해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캠퍼스에서 활동했다. 그는 FBI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샌프란시스코 중국 총영사관으로 도주했다. 샌프란시스코 중국 총영사관은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불법행위를 한 중국인의 ‘은신처’라는 비난과 함께 추가 폐쇄 가능성이 있는 공관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번 총영사관 폐쇄 조치가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인들의 반중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려 선거 구도를 바꿔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4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6%는 중국에 비호감을 갖고 있고, 71%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불신하고 있다. 이런 미국인들의 반중 정서는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대니얼 러셀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NYT에 “이번 조치가 (미국이 주장하는) 지적재산권보다 대통령의 정치적인 문제와 더 연관이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쉽게 논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