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기홍 칼럼]5共 시절 뺨치는 秋법무 독선

입력 | 2020-07-24 03:00:00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미애 법무장관. 아시아투데이 제공

이기홍 논설실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85년~95년 판사로 재직했다. 70년대 후반 한양대에 입학해 81년 졸업했다. 80년대 초반은 대학에 사복경찰(백골단)이 상주하며 곤봉으로 학생들을 구타하고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숱하게 목격하던 시절이다.

그런 엄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법전에 파묻혀 대학 시절을 보냈다 해도,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공기만큼이나 소중하고 절실한 것임을 체화했을 것이다.

집시법, 보안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구속하고, 자동판매기처럼 유죄를 때리는 검·판사들을 보며 사법권 독립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추 장관이 1995년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해 1996년 초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법안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2002년 검사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주는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2020년의 추미애는 정반대에 서 있다. 정반대 정도가 아니라 과거 자신이 ‘검찰개혁 입법’을 통해 없애려 했던 장관의 수사지휘권과 검사인사권을 역대 최고치로 휘두르고 있다.

그런 모순된 행태를 따지는 야당 의원에겐 “(1996년) 그때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검사 출신 법무장관이 관례적으로 지휘를 했고 검찰총장이 말없이 따랐던 때”라고 반박한다.

1996년은 김영삼 정부 4년 차다. 당시 정치부, 사회부에 근무했던 필자의 기억에 검찰은 정치적 처신으로 인해 줄곧 비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적어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추 장관 주장처럼 그런 일방적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전직 검찰총장들은 언론인터뷰에서 장관과 총장은 서로 말 한마디도 절제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를 이어왔다고 전한다. “장관이 총장을 겨냥해 ‘말 안 듣는다’며 부하처럼 여기는 모습은 상상도 못 한 일”이라는게 법조계 원로들의 주장이다.

검찰개혁은 비대한 권한의 축소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확보라는 두 기둥으로 이뤄진다. 추 장관의 행태는 정권의 대리인인 장관과 검찰의 관계를 독재 시절로 되돌리는 ‘반(反)개혁’이다.

추 장관이 국회에서 보인 태도에 대해 국회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필자는 성품과 사고(思考)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추 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술자리에서 한 기자를 향해 “사주(社主)의 지시로 글을 썼느냐. 사주 같은 놈”이라 폭언했다. 그 기자는 사주의 지시는커녕 얼굴을 본 적도 없었을 사람이다.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는 견해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불순한 의도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좌파 정치인들의 고질적 습성이다. 불순한 동기가 개입된 비판이라고 치부해버리면 혹시라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까하고 깊이 돌아볼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의 불편한 심리상태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휴가에 직원들이 자신을 수행케 한 게 문제가 되자 “언론의 여성 장관에 대한 관음증 중독이 심각하다”고 반박하고, 최강욱에의 문자 유출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이 ‘수명자’라는 단어를 문제 삼자 “여자인 장관은 ‘수명자’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되느냐”며 난데없이 성별을 끌어들인다.

자신을 향한 문제 제기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사주의 지시, 음란한 관음증, 여성 차별의식의 발로쯤으로 낙인찍어야 스스로 마음이 편한 것이다.

대개 핏대 정치인은 정치적 욕심이나 계산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추 장관은 이런 점에서도 다른 것 같다.

그는 21일 국회에서 휴대전화로 윤석열 총장의 부인과 장모 의혹 관련 문건을 보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노출됐다. 부주의로 들켰든, 일부러 노출했든 철저히 진실을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설령 그 문건이 추 장관 주장대로 언론보도 종합 문건에 불과하다 해도 검찰총장의 가족에 대한 내용을, 그것도 이미 수 개월전에 논란이 된 일을 누가 일부러 종합해 장관에게 전달했는지, 법무부가 만든 게 아니라면 장관이 누구와 그런 자료를 돌려보는지 규명되어야 한다.

만약 비공개 내용을 담은 보고서라면 이는 사찰 문건이다. 검찰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누군가 그런 보고서를 만들었다면 정권이 흔들릴 사안이다.

중인환시리에 국회에서 그런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그 민감성을 몰랐을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객관화시켜 보는 능력이 보통 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른 이들이 간혹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전 장관이다. 특히 장관에서 경질된지 22분 만에 서울대에 보낸 복직 신청 팩스가 보여주듯 이런 이들의 행동은 조금은 다른 분석틀을 동원해야 설명이 된다.

추 장관은 언론에 노출될 때 얻게 될 정치적 효과만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즉, ‘문빠’들을 향해 그들의 ‘철전지원수’의 가족비리 자료를 보는 자신을 부각시켜 ‘윤석열의 대척점’으로서 입지를 강화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여권의 친문 후보 자리는 아직 무주공산이다.

독재 시절 장관들은 최고 권력자의 점수를 따기 위해 그 어떤 무리수라도 뒀다.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은 권력자가 대통령 한 사람 만이 아니라 친문이라는 팬덤 집단으로 확장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가 있다면 독재 시절 장관들은 그래도 국민들에게 부끄러워도 하고 면목 없어도 했다는 점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