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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어선, 동해 북한 수역서 오징어 5200억원어치 잡아들였다”

입력 | 2020-07-24 03:00:00

AI-위성데이터로 추적해보니




중국의 암흑선단이 유엔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동해로 몰래 들어가 약 2년간 불법 조업으로 5200억 원어치가 넘는 오징어를 남획했다는 인공위성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암흑선단은 선박의 위치를 송출하지 않거나 공개된 모니터링 시스템에 나타나지 않는 무허가 불법 선박이다. 한국인 데이터 과학자와 국제 비정부기구가 주도한 국제 연구가 밝힌 결과다. 중국의 불법 조업 선단 때문에 영세한 북한 어민이 더 위험한 먼바다로 밀려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비영리 민간연구단체 ‘글로벌어업감시’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일본수산연구교육기구, 미국 캘리포니아대는 2017, 2018년 북한 동해에서 중국 어선들이 이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불법 조업을 벌였다는 인공위성 정밀 분석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22일 공개했다.

○중국 암흑선단 추적하는 국제 공조

중국 정부는 수년째 자국 어민의 남획으로 각국 정부와 환경단체의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해양 보호단체인 오세아나, 비영리 위성정보 분석단체인 스카이트루스, 구글은 급기야 2016년부터 인공위성을 동원해 세계 바다를 운항하는 어선 3만5000척을 추적하는 ‘글로벌어업감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인공위성과 선박 정보를 이용해 남획을 일삼는 대형 어선을 추적하겠다는 의도다.

박재윤 글로벌어업감시 수석데이터과학자를 포함한 연구팀은 2017, 2018년 북한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진입한 오징어잡이 선박을 집중 감시했다. 이들 선박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앞바다에서 활동하던 암흑선단이 남해를 거쳐 동해로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을 지속적으로 추적 감시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실정이다. 박 수석과학자는 e메일 인터뷰에서 “한반도 동해 북측 수역은 암흑선단 활동이 심각하지만 인접국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불법 어로 활동이 제대로 감시되지 않고 있다”며 “인공지능(AI)과 여러 위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암흑선단의 조업을 종합적으로 밝혀낼 곳으로 동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네 가지 위성 관측 기술을 조합해 어떤 환경에서도 불법 어선을 추적 감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먼저 미국의 위성영상 서비스 기업 플래닛랩스가 보유한 군집위성을 이용해 두 척의 배가 그물로 어류를 포획하는 쌍끌이 어선을 찾아 AI를 이용해 식별했다.

여기에 구름이 낀 날에도 어선을 찾고 추적할 수 있는 위성 레이더(SAR) 3기를 동원해 선박 크기와 위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마지막으로 선박 이름과 속력 등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 추적해 충돌을 감시하는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통해 선박의 공식적인 움직임을 추적했다. 추적 결과 연구팀은 2017년 796척, 2018년 588척의 쌍끌이 어선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대부분의 오징어잡이 어선이 밤에는 불을 켜고 오징어를 유인해 잡는다는 점에 착안해 고감도 적외선감지기(VIIRS)를 장착한 위성을 동원해 이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7년에는 108척, 2018년에는 130척의 오징어잡이 선박을 찾아냈다.

공동연구팀이 2년간 수집한 위성 정보를 분석해 찾아낸 중국의 불법 선박은 1600척이 넘는다. 잡아들인 오징어는 16만4000t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4억4000만 달러(약 5263억 원)어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오징어 어획량을 올린 일본과 한국의 전체 어획량을 더한 것과 맞먹는 양이다. 박 수석과학자는 “이런 규모의 불법 선단은 중국 전체 원양어선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라며 “한 국가의 상업 선단이 다른 나라 수역에서 저지른 불법 조업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영세한 북한 어민은 먼바다로 밀려나

연구팀은 선체 길이가 10∼20m에 불과하고 전구 몇 개만 달고 조업하는 작고 영세한 북한 어선들이 러시아 연안에서 오징어를 잡고 있는 상황을 포착했다. 2018년에만 이런 활동은 3000회 이상 포착됐다. 이정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길이가 50m에 첨단 장비로 무장한 중국 쌍끌이 어선과의 경쟁에 밀려 북한 어민들이 인근 러시아 해안까지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타고 있는 소형 목선은 작고 열악해 이처럼 먼바다로 나가는 데 적합하지 않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북한 어선 수백 척이 러시아나 일본 해안을 표류하고 일부 어민들이 숨진 채로 발견되고 있는 것도 중국 어선들의 북한 수역 진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2018년 러시아 해역에서 북한 어선의 어로 활동이 2015년에 비해 약 6배 늘어났다는 사실도 이번에 드러나 해가 갈수록 중국 암흑선단의 횡포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수석과학자는 “중국의 대규모 상업 어선단 때문에 영세 어민이 피해를 받는 사례는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며 “위성 데이터와 AI를 이용해 국가 어업감시기구에 기술을 지원하면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어로 활동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암흑선단의 불법 남획으로 동해의 어류 자원이 고갈되고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03년 이후 한국과 일본의 오징어 어획량은 각각 80%와 82% 줄어든 상태로, 배후에는 중국의 불법 조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수석과학자는 “오징어와 같이 국가 간 경계선을 넘나드는 어종을 관리하려면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며 “역내 국가들이 데이터와 과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지역 어업을 협력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