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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종합지식인’ 토머스 홉스의 傳記

입력 | 2020-07-25 03:00:00

◇홉스/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지음·진석용 옮김/632쪽·2만9000원·교양인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언제든 타인을 해칠 수 있으므로 합의에 의해 절대 권력자에게 주권을 양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기 3년 전의 홉스를 그린 초상화(영국 더비셔 하드윅 홀 소장). 동아일보DB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홉스(1588∼1679)에 대해 배운 기억은 있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세 가지 키워드를 떠올려보자. ‘만인 대(對) 만인의 투쟁’ ‘사회계약론’ ‘리바이어던(leviathan)’.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든 사람에 대해 늑대’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민의 주권을 권력자에게 양도함으로써 국가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을 집대성한 책이 ‘리바이어던’(1651년)이다. 성경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다. 합의로 생겨난, 괴물 같은 권력이 인간을 보호한다고 본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학술서는 아니다. 연구 자료도 변변치 않고, 창칼을 들고 논적과 승부를 겨룬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논문은 아닐지라도 겸사(謙辭)가 지나치다. ‘홉스 사전’을 저술하는 등 최고의 홉스 전문가로 인정받아온 저자는 이 사상가가 겪은 세세한 에피소드부터 일생 동안 펼친 논전, 그의 사상에 놓인 토대와 세부, 오해와 결함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리바이어던’을 내놓은 뒤 1650, 60년대 홉스의 삶은 수많은 논쟁으로 점철된다. 저자의 해박함이 빛나는 부분이다. 유럽 사상계의 라이벌이었던 데카르트와의 논전은 박진감까지 느껴진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했고 홉스는 물질적 실체만 인정했다. 저자는 홉스를 일방적으로 응원하지 않는다. ‘둘 다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다.’ 홉스는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비틀어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해도 된다’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험담이고 모욕이다. 설득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때로는 젊은 홉스가 ‘만년의 홉스’의 라이벌이다. ‘리바이어던’에 앞서 쓴 ‘시민론’ 2판에는 저자가 ‘무지와 공포 논증’이라고 부르는 논증이 나온다. ‘사악한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들과 선량한 사람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하고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논증이 이후 나온 리바이어던보다 설득력 있다며 ‘때로는 홉스가 나중에 쓴 저서보다 초기 저서가 낫다’고 못 박는다.

논증과 분석으로만 수놓아진 딱딱한 책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셰익스피어를 낳은 17세기 영국의 문화적, 사회적 다양함이 곳곳에 녹아들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홉스의 최대 후원자였던 캐번디시가의 여주인 베스는 엘리자베스 1세 대(對) 메리 여왕의 갈등에 얽혀들며 위기에 빠졌다가 빠져나온다. 홉스가 한 세대 위 사상가 베이컨의 비서로 일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각자의 생각이 뚜렷했기에 서로를 차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신화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보면 유사점이 엿보인다.

격식 있는 문체를 유지하다가도 때로 숨겨둔 카드처럼 가만히 전하는 저자의 ‘개인 취향’은 이 커다란 책에 매력을 더한다. ‘산문은 시가 될 수 없다. 시적 희열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홉스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제인 오스틴과 엘리엇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그의 주인공을 질타한다.

우리 사회에 소개되어온 홉스 관련 저작물은 ‘리바이어던’과 그 해설서 정도였다. 이 책은 사회철학을 넘어 자연과학과 신학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에서 성과를 남긴 이 종합적 지식인의 전모를 살피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서는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이 1999년 발간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