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부동산 ‘패닉 바잉’ 실태와 해법 고강도 규제가 되레 불안감 자극… “더 늦기전에 서울에 집 마련” 상반기 주택 거량 작년의 2배 ‘똘똘한 한채’로 갈아타기도 늘어 다세대-연립 오피스텔까지 들썩 전문가들 “규제 풀어 공급 늘려야”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전셋집에 살던 직장인 신모 씨(33)는 지난달 ‘6·17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 서울 서대문구 6억 원대 아파트를 샀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집 사기는 더 어려워졌는데 서울 전셋값과 매매가격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지자 ‘더 이상 늦으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휴가까지 내고 집을 보러 다니면서 매수를 서둘렀다. 그는 “집을 산 뒤 아파트 시세가 올랐고 은행대출 한도가 줄었다”며 “하루라도 일찍 사길 천만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황 구매)’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공급을 충분히 늘리지 않은 채로 고강도 규제를 잇달아 쏟아내면서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모두 크게 오르자 수요자들이 ‘지금이라도 안 사면 영영 집을 못 살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연령을 불문하고 주택 구매를 서두르고 있어서다.
이들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세대, 연립, 오피스텔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서울 도심의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까지 더해져 매수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공급을 충분히 늘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확실하게 보내야만 무주택자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 “이러다 못 산다” 위기감에 거래량 껑충
새 아파트가 공급되고는 있지만 청약 가점이 낮으면 새 아파트 구입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단지 상당수의 당첨 커트라인(최저가점)은 84점 만점에 50점대 후반이나 된다. 청약 가점은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따져 산정한다. 가장 배점이 큰 무주택 기간은 30세부터 산정한다.
○ 다세대, 연립까지 ‘패닉 바잉’ 확산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다세대, 연립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최근 서울 재개발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에 투자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향후 재개발을 기대하고 종잣돈 부담이 적은 재개발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연립·다세대 주택은 지난해 12·16대책(15억 원 초과 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대출 전면 금지)이나 올해 6·17대책(3억 원 이상 아파트 구입 시 전세자금대출 제한 및 회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22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아현1구역 소재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30대 아들을 대동하고 매매 상담을 받고 있었다. 빌라를 전세 끼고 샀다가 향후 아파트로 재개발이 되면 아들을 입주시킬 생각이라는 것. 이날 이들이 둘러 본 다세대빌라(전용 약 60m²)는 8억 원대로 6·17대책 이후 집주인이 거둬들였다가 최근 2000만 원을 올려 다시 내놓은 매물이다. 부동산 중개인 김모 씨는 “매물이 없어서 문제지 장마철인데도 매수 문의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원모 씨도 “지금 아니면 내 집 마련이 영영 어려울 것 같은데, 아파트는 너무 올랐으니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다세대·빌라를 알아보러 왔다는 실수요자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매매거래(23일 기준)는 6019건으로 2018년 3월(5950건) 이후 2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나타냈다. 올해 5월 다세대·연립주택 매매거래(4597건)나 전년 6월 매매거래(3489건)와 비교하면 각각 30.9%, 72.5% 증가했다.
○ 단톡방으로 부동산 공부하고 단체 임장 열기
부동산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함께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거나 오프라인 정모에서 함께 임장(해당 지역을 둘러보러 간다는 의미의 부동산 업계 은어)을 가는 식이다. 직장인 이모 씨는 700여 명이 참여하는 ‘부동산 스터디’ 단톡방을 통해 1년 넘게 부동산 투자 공부를 하다 최근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투자처를 찾고 있다. 그는 “부동산은 전국이 불장(Bull Market·상승장)이어서 투자자도 많고 실제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며 “한때 인기였던 비트코인 투자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유명 부동산 강사의 부동산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기 시작했다는 회사원 박모 씨(38)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내 집 마련에 관심이 없었던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대학생들까지 지방에서 올라와 부동산 강의를 듣는 걸 보고 부동산 투자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패닉 바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무리한 대출을 일으킨다거나, 말 그대로 ‘패닉’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들 “규제 풀어 공급 늘려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패닉 바잉을 불러온 만큼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 서울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5021채로 올해(4만8601채)의 절반 수준이다. 시장 불안을 잠재울 만한 공급 확대가 없다면 주택 구입을 미룬 대기 수요까지 더해져 패닉 바잉이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수요가 몰리는 서울 도심에는 주택을 지을 만한 빈 땅이 거의 없는 만큼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 규제를 풀거나 용적률을 높이는 등 고밀도 개발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자꾸만 시장을 통제하려는 게 문제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며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부터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중에 유동성이 너무 많이 늘었다”며 “공급 확대에 앞서 국채를 발행하거나 사회 인프라 투자로 유동성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경 yunique@donga.com·이새샘·정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