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베스트 닥터]<9> 정규하 고려대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 생존율 낮고 재발률 높은 뇌종양, 그만큼 안전하고 끈질긴 치료 중요 전공의 마친뒤 KAIST서 공부… 10여년 걸쳐 연구해 치료법 개발 동물시험 중… 10년내 임상 적용
정규하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종양 환자들에게 끈질기게 투병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정 교수는 빛을 이용해 뇌종양을 진단함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10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려대구로병원 제공
이후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2년이 지났다. 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병실로 걸어 들어왔다. 마비 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정 교수는 “그때의 풍경이 선하다. 그저 살아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현재는 뇌종양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뇌종양은 끈질기게 치료해야 하는 병”
정 교수는 고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의대에 진학한 후로는 뇌 과학에 빠졌다. 신경외과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생 환자 스토리는 뇌경색 치료 과정에서 탄생했지만, 그 이후 정 교수는 뇌종양을 전공으로 삼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뇌종양은 생존율이 40∼50%로 낮은 질병이다. 재발률도 5∼10%로 높은 편이다. 종양이 생긴 부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는 양성과 악성 뇌종양으로 나눈다.
양성 뇌종양은 일단 암은 아니다. 대부분 천천히 자란다. 아예 자라지 않을 수도 있어 일단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수술이 용이한 부위라면 수술로 1차 치료를 끝내기도 한다.
악성 종양이라면 당장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암 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를 곧바로 시행한다. 암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머리를 열 수도 있고, 코로 내시경을 삽입할 수도 있으며 방사선 치료 혹은 항암 치료를 한다. 종양이 있는 부위에 따라 수술 방법도 다양하다. 때로는 수술 도중에 환자를 깨워 반응을 살피는가 하면 뇌파 분석을 병행하기도 한다.
정 교수는 “뇌종양은 몸에 나타나는 증상도 다양해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며 “일단 판정을 받으면 굳게 마음먹고, 끈질기게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병이 꽤 진행된 환자와 가족이 얼마나 더 사느냐고 물어올 때가 가장 괴롭다. 하지만 의사로서 최대한 노력할 테니 환자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빛 이용해 동시에 진단-치료 기술 개발”
정 교수는 “뇌종양 치료의 국제 가이드라인은 ‘최대 안전 절제’다”라고 말했다. 뇌종양이 의심되면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절제하라는 뜻. 정 교수는 “이게 쉽지 않다.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뇌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려면 뇌를 많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암을 잡으려면 수술 부위를 넓혀야 한다. 이 경우 뇌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정 교수는 그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레지던트를 마친 후 KAIST 의과학대학원에 편입했다. 4년 동안 뇌종양 연구를 한 후 이학 박사가 됐다. 주로 나노 약물과 빛을 이용한 치료법을 연구했다. 그로부터 10년. 정 교수는 외부 기관과 함께 ‘빛을 이용한 동시 진단-치료’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원리를 더 발전시키면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특정 파장을 찾아내 쬐면 된다. 아직까지 이 치료법은 국내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는데, 정 교수가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 이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암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약물 외에도 첨단 광학 기술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 정 교수가 KAIST에서 연구한 분야다.
정 교수가 개발한 시스템은 현재 동물실험 단계다. 실제 임상에 적용된다면 진단과 치료, 모든 분야에서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언제 임상 적용이 가능할까. 정 교수가 말했다. “10년. 빠듯하지만 그 안에 시스템을 반드시 가동시키겠습니다.”
▼ 멍 때리기와 새로운 도전으로 뇌에 적절한 휴식과 활력 줘야 ▼
정 교수가 조언하는 뇌건강 관리법
뇌종양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따라서 뇌종양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예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무런 예방법이 없는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뇌를 충분히 쉬게 하고, 뇌 건강을 챙기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의학자들 사이에 나온다. 정규하 고려대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가급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른바 ‘멍 때리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루에 5분 정도는 반드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의자에 앉은 채로, 혹은 샤워하는 도중 눈을 감은 상태로 가만히 있는 식이다. 그 다음에 기지개를 켜면 훨씬 뇌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정 교수는 “이런 식의 이완 작용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뇌를 쉬게 해 줬으면 자극하는 것 또한 정 교수가 추천하는 방법. 정 교수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뇌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뇌를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했다. 휴대전화로 콘텐츠를 즐긴다면 가끔은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의 기사를 굳이 찾아서 읽는 것도 좋다. 생소함이 자극이 된다는 것. 음식을 먹을 때도 늘 먹던 것 말고 가끔은 새로운 것을 먹을 것을 정 교수는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