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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이용한 동시 진단-치료법… 뇌종양 치료에 ‘희망의 빛’

입력 | 2020-07-25 03:00:00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9> 정규하 고려대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
생존율 낮고 재발률 높은 뇌종양, 그만큼 안전하고 끈질긴 치료 중요
전공의 마친뒤 KAIST서 공부… 10여년 걸쳐 연구해 치료법 개발
동물시험 중… 10년내 임상 적용




정규하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종양 환자들에게 끈질기게 투병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정 교수는 빛을 이용해 뇌종양을 진단함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10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려대구로병원 제공

《평생 기억에 남을 환자. 의사라면 그런 ‘인생 환자’가 한 명씩은 꼭 있다. 정규하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39)는 레지던트 때 주치의를 맡았던 한 살배기 뇌경색 환자를 떠올렸다. 응급실로 실려 왔을 때 그 아이의 뇌는 이미 절반이 막혀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야 했기에 가능한 모든 치료를 동원했다. 급기야 마취제를 강력하게 써서 일시적으로 모든 대사를 중단시켰다 재가동하는 ‘코마 치료’까지 시행했다. 생사를 넘나든 일주일이었다. 그 기간 내내 정 교수는 아이의 곁을 지켰다. 기적이라 해야 할까. 성인도 견디기 힘든 그 치료를 아이는 견뎌냈다.》

이후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2년이 지났다. 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병실로 걸어 들어왔다. 마비 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정 교수는 “그때의 풍경이 선하다. 그저 살아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현재는 뇌종양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뇌종양은 끈질기게 치료해야 하는 병”
정 교수는 고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의대에 진학한 후로는 뇌 과학에 빠졌다. 신경외과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생 환자 스토리는 뇌경색 치료 과정에서 탄생했지만, 그 이후 정 교수는 뇌종양을 전공으로 삼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뇌종양은 생존율이 40∼50%로 낮은 질병이다. 재발률도 5∼10%로 높은 편이다. 종양이 생긴 부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는 양성과 악성 뇌종양으로 나눈다.

양성 뇌종양은 일단 암은 아니다. 대부분 천천히 자란다. 아예 자라지 않을 수도 있어 일단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수술이 용이한 부위라면 수술로 1차 치료를 끝내기도 한다.

다만 양성이라 하더라도 신체 증상이 나타나면 수술하기도 한다. 일부 양성 종양은 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 양성 종양이라 하더라도 생명 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에 생겼다면 악성만큼이나 위험하다. 이 경우 악성에 준하는 치료를 한다.

악성 종양이라면 당장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암 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를 곧바로 시행한다. 암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머리를 열 수도 있고, 코로 내시경을 삽입할 수도 있으며 방사선 치료 혹은 항암 치료를 한다. 종양이 있는 부위에 따라 수술 방법도 다양하다. 때로는 수술 도중에 환자를 깨워 반응을 살피는가 하면 뇌파 분석을 병행하기도 한다.

정 교수는 “뇌종양은 몸에 나타나는 증상도 다양해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며 “일단 판정을 받으면 굳게 마음먹고, 끈질기게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병이 꽤 진행된 환자와 가족이 얼마나 더 사느냐고 물어올 때가 가장 괴롭다. 하지만 의사로서 최대한 노력할 테니 환자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빛 이용해 동시에 진단-치료 기술 개발”
정 교수는 “뇌종양 치료의 국제 가이드라인은 ‘최대 안전 절제’다”라고 말했다. 뇌종양이 의심되면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절제하라는 뜻. 정 교수는 “이게 쉽지 않다.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뇌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려면 뇌를 많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암을 잡으려면 수술 부위를 넓혀야 한다. 이 경우 뇌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정 교수는 그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레지던트를 마친 후 KAIST 의과학대학원에 편입했다. 4년 동안 뇌종양 연구를 한 후 이학 박사가 됐다. 주로 나노 약물과 빛을 이용한 치료법을 연구했다. 그로부터 10년. 정 교수는 외부 기관과 함께 ‘빛을 이용한 동시 진단-치료’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실 빛으로 뇌종양을 진단하는 기술은 2010년대 중반에 국내에 도입돼 일부 병원이 시행 중이다. 원리는 이렇다. 우선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한다. 특정 파장의 빛을 뇌 부위에 쬐면 그 약물이 반응해 암세포를 형광물질처럼 빛나게 한다. 주변 조직에 흩뿌려진 작은 암 조직들도 빛난다.

이 원리를 더 발전시키면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특정 파장을 찾아내 쬐면 된다. 아직까지 이 치료법은 국내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는데, 정 교수가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 이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암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약물 외에도 첨단 광학 기술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 정 교수가 KAIST에서 연구한 분야다.

정 교수가 개발한 시스템은 현재 동물실험 단계다. 실제 임상에 적용된다면 진단과 치료, 모든 분야에서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언제 임상 적용이 가능할까. 정 교수가 말했다. “10년. 빠듯하지만 그 안에 시스템을 반드시 가동시키겠습니다.”


▼ 멍 때리기와 새로운 도전으로 뇌에 적절한 휴식과 활력 줘야 ▼
정 교수가 조언하는 뇌건강 관리법

뇌종양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따라서 뇌종양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예방법은 없다.

뇌의 어느 부위에 종양이 생기느냐에 따라 신체에 나타나는 증세도 다양하다. 종양이 시력중추를 누르면 시력이 떨어진다. 언어중추를 누르면 말이 어눌해진다. 운동중추를 누르면 운동 기능이 떨어지고, 소화중추를 누르면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식이다. 증세만으로 자가 진단이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60세 이후에 많이 발생한다는 게 힌트라면 힌트다. 결국 60세 이후에 갑자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 의사와 상담하고, 이후 뇌 검사를 하는 게 최선이다. 일반적으로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등으로 확인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무런 예방법이 없는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뇌를 충분히 쉬게 하고, 뇌 건강을 챙기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의학자들 사이에 나온다. 정규하 고려대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가급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른바 ‘멍 때리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루에 5분 정도는 반드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의자에 앉은 채로, 혹은 샤워하는 도중 눈을 감은 상태로 가만히 있는 식이다. 그 다음에 기지개를 켜면 훨씬 뇌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정 교수는 “이런 식의 이완 작용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뇌를 쉬게 해 줬으면 자극하는 것 또한 정 교수가 추천하는 방법. 정 교수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뇌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뇌를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했다. 휴대전화로 콘텐츠를 즐긴다면 가끔은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의 기사를 굳이 찾아서 읽는 것도 좋다. 생소함이 자극이 된다는 것. 음식을 먹을 때도 늘 먹던 것 말고 가끔은 새로운 것을 먹을 것을 정 교수는 권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