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210회 완주한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하고 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산악인이자 마스터스마라토너인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72)은 19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210회째 완주했다. 공식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8860.95km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8848m의 1000배인 8848km를 넘겼다. 그는 “생전 박영석 대장과 한 약속을 지켜 기쁩니다. 박 대장이 하늘에서 축하해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며 “이젠 박 대장이 평소 말했던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실천할 겁니다”고 말했다.
2006년 초였다. 2005년 히말라야 14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 대장은 중국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횡단 등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국대 산악회부터 박 대장의 후원자였던 이 전 이사장은 어떻게 응원할까 고민하다 ‘박 대장 인터넷 응원창’에 8848km를 달리며 응원겠다고 선언했다.
‘형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날 피니시라인에서 기다리다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210회째를 완주한 뒤 함께 달린 동호회 회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박 대장이 1983년 동국대에 입학해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이 전 이사장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동국산악회가 졸업생과 재학생의 끈끈한 우정을 이어 가고 있어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냈다. 이 전 이사장은 동국산악회 회장을 맡아 박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직접 후원하기도 했다. 그는 “학번 차이가 15년이라 함께 등정할 수는 없었지만 베이스캠프까지는 함께 가는 등 박 대장의 등반을 늘 응원했었다”고 말했다.
평소 조깅을 즐기던 이 전 이사장은 2003년 말 지인을 따라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했다. “산을 같이 다니던 후배가 ‘형님 저 풀코스 완주했습니다’고 하기에 ‘그래? 나도 한번 달려볼까’하며 달리면서 마라톤에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3년 춘천마라톤에서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해 이 대회만 17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 전 이사장은 지난해 춘천마라톤을 17년 연속, 동아마라톤을 16년 연속 완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요즘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열리는 공원사랑마라톤에 출전하고 있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2004년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하며 16년 연속 완주했다.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이 전 이사장은 “영석이는 갔지만 내가 먼저 꺼낸 약속을 저버릴 순 없었다. 평소에도 풀코스를 계속 달리고 있었는데 인터넷 응원창에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한 친구가 다시 얘기하기에 더 열심히 달렸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영석이 때문에 내가 더 건강해진 것 같다. 70세를 넘겨서도 그 약속을 지키려 매일 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라톤에 입문하며 1년에 풀코스를 2,3회 완주하던 그는 2011년부터 완주 횟수를 크게 늘렸다. 그해만 38회를 완주했다. “2011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 100회를 완주했다. 그런데 그 바로 2주 전에 박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 안타까웠다. 그 때부터 더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집중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잠시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박 대장과의 약속을 위해 그는 ‘105리의 고행’을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풀코스를 달리는 게 쉽지는 않다. 30km을 넘어서면 ‘내가 왜 이런 고행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런데 피니시라인만 통과하면 ‘다음 주는 어떤 마라톤대회에 나가지?’를 고민한다. 그게 마라톤이다. 영석이도 고산을 오르며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마라톤과 등산은 통한다.”
이영균 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생전 박영석 대장하고 함께 한 모습. 이영균 전 이사장 제공
“마라톤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러 무릎을 위해 이제 그만 달리라고 한다. 안 뛰어본 사람들 얘기다. 아프면 달리지 못한다. 난 아직 멀쩡하다. 달리니 오히려 무릎이 더 강해졌다. 주변 근육도 단련돼 아무리 달려도 안 아프다.”
마라톤과 등산 뭐가 더 좋을까?
“솔직히 산을 오르는 게 더 좋다. 하지만 마라톤도 매력적이다. 산을 잘 오르면 하체가 강화돼 마라톤도 더 잘 즐길 수 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산도 오르고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하겠다.”
한편 재단법인이었던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은 사단법인 박영석탐험문화진흥원으로 바뀌었고 이사장은 박 대장의 아내인 홍경희 씨가 맡게 됐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