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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法의 독재 공화국

입력 | 2020-07-27 03:00:00

文정권의 대한민국, 법치국가인가… ‘입법독재’ ‘法비틀기’ 법체계 누더기
法治 최후 보루 사법부마저 흔들




박제균 논설주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호소문은 절절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딸을 둔 아버지로서 깊은 공감과 슬픔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정한 법’과 법치(法治)에 호소하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소시민들이, 특히 궁지에 몰린 약자가 이 나라 법에 대해 갖는 마지막 기대와 신뢰는 이런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박 전 시장 통화내역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데 이어 서울시청과 박 전 시장 휴대전화 압수수색영장도 기각했다. 피해자는 지금 자신이 기대한 대로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끝 모를 거대한 2차 피해의 공포에 떨고 있을까.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내게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피해자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국가인가. 오늘로 윤미향 사태 82일째. 고발장이 접수된 것도 두 달 반이 넘었지만 검찰은 소환조사조차 못하고 있다. 법은 국회의원 윤미향과 일반인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모두 공정하고 평등한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 압승하면서 거여(巨與)의 ‘입법독재’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 그래도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폭주할 줄은 몰랐다. 이명박 정권 때인 18대 총선에선 범여(汎與) 정당이 185석을 석권하고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민주당에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자리가 돌아갔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싹쓸이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根幹)을 뒤흔드는 법안을 쏟아내는 건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욕(汚辱)으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법제화라도 하면 낫다.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재산세 폭탄’을 투하해 여기저기서 곡소리 나게 하는 건 조세법률주의 위반 아닌가. 게다가 상위법을 거스르는 시행령, 위헌 소지가 큰 소급법안 등을 남발해 나라의 법체계를 누더기로 만드는 건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최후의 권력기관’인 사법부, 즉 법원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 중국에도 법원은 있지만 중국을 실질적인 법치국가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법원의 판결이 지방 실력자, 판사와의 친소 관계, 공산당 입김, 권력 수뇌부 등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법치의 보루는 단연 사법부였다. 그 사법부가 지금 흔들린다.

최근 대법원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의 정치생명을 살려주는 두 개의 판결을 했다. 이 지사를 살려준 다수 의견은 방송토론회에서 ‘소극적 거짓말’을 한 것은 인정되나 “토론 과정에서 검증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했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거짓말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판을 얼마나 더 오염시키려고 하나. 이러니 이 지사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확인했다”는 적반하장 식 소감을 내고,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가 뒤집으며 “주장이 아니라 의견이었다”고 말장난을 하는 것 아닌가.

하급법원에선 친문 실세들과 가까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를 인정하면서도 석방하고, 대학 구내에 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 채널A 기자를 구속한 판사는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는 여느 구속영장 발부사유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이유까지 댔다.

법의 수호자여야 할 법원부터 이러니 여권에선 국가 최상위법인 헌법마저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변경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이해찬 대표는 ‘개헌할 때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된다’고 했다. 헌재 결정과 개헌도 입맛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다.

과거 독재 정권은 정통성이 없다는 태생적 약점 때문에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민주화 30년이 지나서 출범한 이 정권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법을 만들어서, 법을 비틀어서, 검찰을 압박해서, 법원을 흔들어서, 헌재 결정을 바꿔서, 개헌을 해서라도 기필코 해내려 한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당당하다. 이쯤 되면 법치주의 원리인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독재다. 그래도 지금 어딘가에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이대로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된다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고뇌의 밤을 보낼 적지 않은 판사들이 여전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