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코로나19 의심환자 1호는 의외의 인물이다. 북한은 1월 22일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지만 중국과는 왕래가 이어져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에서 감염 위험이 있어 격리 중인 사람은 610명인데 모두 신의주-중국 단둥 국경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1호 환자는 중국에서 유입된 게 아니라 남한에서 넘어갔다는 탈북민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그는 2017년 귀순한 20대 남성 김모 씨. 지난달 탈북민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강화군 교동도 해상을 통해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WHO에 따르면 북한에선 이달 9일까지 1117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러시아 등이 지원한 진단키트로 검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치료 역량을 갖추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는 35.1명으로 남한(23명)보다 많지만 질적인 수준은 극도로 열악하다. 음압병동이나 격리치료시설은커녕 기초적인 의약품과 의료소모품도 태부족이다. 2018년엔 결핵으로 2만 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북한 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며 사망자가 270명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럼에도 코로나 발생 사실을 극구 부인해 온 북한이 돌연 ‘남쪽에서 온 의심환자’를 공개하면서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난리다. 코로나 유입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당당하게 손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올 3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길 빌겠다”는 친서는 밑밥이었을까. 봉쇄와 총살로 버티다 느닷없이 ‘월북 코로나 의심환자’를 들고 나온 북한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