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학교양서적 판매 돌풍, 왜?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 인식 늘고
‘해결 못한 숙제’ 부채의식 남아… 코로나로 집콕하며 ‘수학 삼매경’
수학 마인드 요구하는 회사 많아, 직장인 등 성인대상 강의도 인기
아이작 뉴턴은 시간마다 변하는 자유낙하 물체의 속도와 그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2차 함수(곡선)를 1차 함수(직선)로 잘게 나누는 미분, 또 그것을 합하는 적분 개념을 활용했다.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 삽화. 바다출판사 제공
웹툰 ‘계룡 선녀전’으로 이름을 알린 돌배(본명 장혜원) 작가는 3년 전 ‘어른의 수학’이라는 성인 대상 교양 강의를 듣고 뒤늦게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재는 스탠퍼드대 레너드 서스킨드 물리학과 교수가 쓴 ‘물리의 정석’(사이언스북스). 학창시절 예체능을 전공해 ‘수포자(수학포기자)’였지만 늦게라도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이해해보고자 도전한 수업이었다. 돌배 작가는 “학창시절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 ‘세상의 반밖에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며 “수업을 들은 후 ‘문명과 수학’(민음인)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고 차기 웹툰에 적용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인디 뮤지션이자 직장인인 박진우 씨(38)도 같은 수업을 들었다. 박 씨는 “학교 다닐 때 미분, 적분을 배웠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수학과 거리가 멀었지만 이제는 상대성이론이나 천문학 관련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학창시절 수학과 담을 쌓고 지냈던 성인들 가운데 뒤늦게 수학에 눈을 뜨는 이들이 늘면서 수학 교양서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학생 때와 달리 입시,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는 교양과 상식으로서의 수학을 접하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올해 1월부터 7월(17일 기준)까지의 과학 분야 판매순위를 조사한 결과 상위 10위 안에 ‘이상한 수학책’(북라이프)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바다출판사)이 각각 6,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각각 올해 3월과 1월에 출간한 신간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집콕’ 하며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찾게 된 영향”이라고 했다.
성인들이 수학 교양서적을 찾는 경향은 2017년 전후로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당시 사이언스북스가 ‘물리의 정석’을 교재로 한 수학 강좌 모집에 예상 인원(100명)보다 훨씬 많은 300명이 몰렸다. 수업을 찾은 이들은 30, 40대 일반 직장인을 비롯해 영어 선생님, 판사, 전업주부 등 다양했다. ‘어른의 수학’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과학 콘텐츠 개발 그룹 ‘과학과 사람들’의 최진영 대표는 “무작정 삼각함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연료량 구하기’ 등으로 재미있게 접근했다”며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몰입도를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관심은 많은 성인이 수학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을 펴낸 바다출판사의 김인호 대표는 “문과생은 미적분이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은 알지만 계산을 어려워하고, 이과생은 계산은 할 줄 알지만 미적분의 본질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각각 욕구는 다르지만 수학을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보는 인식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라고 했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주간은 “문·이과생 나름대로 각자 ‘수학을 마스터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며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통계, 함수, 코딩 등 수학적 마인드를 요구하는 회사가 많아지는 추세라 수학 서적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