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경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 씨(24)가 범죄 피의자로 지목된 건 지난달 12일.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과 술을 마신 뒤 성폭행한 혐의였다. 김 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관련 증거물에서 김 씨의 DNA를 찾아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약 1개월 동안 김 씨는 월북할 준비를 해나갔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빼 달러로 환전했고 TV 등도 모두 처분했다. 심지어 주변 지인들에게 “북한에 돌아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21일 한 차례 불러 조사한 것 외에는 김 씨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탈북민 신변보호담당관도 전화 통화 1번한 게 전부였다. 심지어 이미 월북한 뒤조차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음날쯤에야 출국 금지를 조치했다.
● 성범죄 피의자를 월북 이틀 뒤 영장 신청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김 씨의 소재 파악에 나선 건 18일경. 이날 새벽부터 행방이 묘연해진 김 씨는 이미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심지어 경찰이 움직인 건 김 씨가 ‘피해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주변 제보 때문이었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를 강화한 뒤 20일 출국 금지 조치했다. 그때까지 불구속 수사하던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21일이었다. 이후 위치 추적 등 신병확보 수사를 진행한 건 24일 전후. 거의 1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김 씨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 감시가 느슨했던 동안 김 씨는 월북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17일 지인에게 빌린 차를 타고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갔다가 김포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월북 경로를 미리 사전 답사했단 뜻이다. 김포에선 인근 마사지업소에 들르기까지 했다. 다음날 새벽 택시를 타고 강화읍 월곳리로 간 김 씨는 오전 2시20분경 내린 뒤 종적을 감췄다.
경찰 측은 “(김 씨의 범죄에 대한) 증거가 확보됐고 조사도 잘 받아서 별다른 소재 파악을 하지 않았다”며 “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여서 조만간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었는데 월북을 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 군 경계초소 인근 배수구로 빠져나가
김 씨가 월북한 출발점으로 알려진 월곳리에는 군의 경계소초 인근에 여러 개의 배수구가 있다. 사각형의 배수구는 가로세로 약 1.5m 크기로 성인 남성이라도 “을 움츠리면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구조다. 바로 위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지만 이 배수구를 따라가면 곧장 바다로 연결됐다.
김 씨는 2017년 8월 탈북해 남한으로 올 때도 이 인근으로 건너왔다. 강화도에서 북한 땅은 최단 거리가 1.3㎞정도로, 당시 김 씨는 페트병 등을 ”에 두르고 헤엄쳐 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전문가는 “일반인이 2번이나 남북으로 헤엄쳐 건널 정도라면 훈련을 받은 전문가라면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장 경계가 삼엄해야 할 지역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