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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의 ‘지난 여름’[청와대 풍향계/황형준]

입력 | 2020-07-28 03:00:00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황형준 정치부 기자

지병을 앓다 올해 5월 고인이 된 이재경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을 2월 만난 적이 있다. 진영 논리를 떠나 여의도 책사 중 한 명으로 통했던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비공개로 한 것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국회가 공소장을 공개해 온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추 장관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가 삼보일배에 나섰던 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네이버 댓글은 인신공격과 욕설, 비하와 혐오의 난장판”이라며 그의 지시로 시작된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일까지 더해 ‘추 장관의 3대 실책이라고 표현했다.

고인의 마지막 평가가 6개월 만에 떠오른 건 최근 만난 전직 의원 A 씨의 이야기와 중첩되면서다. 그는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고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추 장관에 대해 “독종 중에 독종”이라고 평가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A 씨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인 18대 국회에서 여야가 새해 예산 처리를 하던 중 다른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며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절박한 당 상황을 외면하고 자기 자리에 앉아 혼자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2010년 12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자 야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대치할 당시 광경이다.

최근 들어 추 장관이 존재감을 연신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과할 때가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초선 의원 대상 ‘슬기로운 의원 생활’ 간담회에서 강연 도중 취재진이 방송 녹음기를 치우자 왼손으로 테이블을 빠르게 두드리며 “녹음기 빼간 분은 조금 후회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자기편의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법 기술을 부리고 있다”, “장관 말을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위증교사 진정 사건의 조사를 대검 감찰부에 맡기지 않고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배당한 윤 총장의 당초 조치를 비판한 것이다.

휴가에 직원들이 자신을 수행케 한 게 문제가 되자 “여성 장관에 대한 관음증 중독이 심각하다”며 ‘여성’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휴가 장소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것도 그 자신이었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장관은 자신에게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걸 싫어했고 여성계의 이슈도 외면해 왔는데 불리하니 ‘여성 장관’을 이용한 격”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같은 세간의 평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대선을 전후해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당직자의 청와대 파견 등을 놓고 당시 당 대표였던 추 장관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신경전을 벌였고 결국 임 전 실장은 한 차례 면담이 무산된 끝에 장미꽃을 들고 추 장관을 만났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는 데 조직 장악력이 있고 무게감이 있는 추 장관이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추 장관을 향한 청와대 참모진의 시선도 복잡미묘하다.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추 장관이 취임한 후 이전 법무부가 반대해 오던 법안들이 속전속결로 처리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추 장관의 행보가 좀 더 진중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서울시장 선거나 대선 출마에 마음이 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거침없는 ‘정치인 추미애’의 노이즈 마케팅보다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추상같이 공정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추 장관이 SNS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고유의 업무에 집중하는 게 인사권자를 위한 길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