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속 빛난 K기업] <1> 한국 전기차 배터리 나홀로 호황
당연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잔뜩 얼어붙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1∼5월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전년 동기 대비 23.9% 감소한 32.5GWh(기가와트시)였다. 중국, 일본을 대표하는 배터리 업체 CATL, 파나소닉 배터리의 사용량은 각각 31.7%, 22.1% 줄어들었다. 이들 배터리를 사용하는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량이 급감한 탓이다.
하지만 ‘K배터리’의 저력은 위기 속에서 빛났다. 올해 1분기(1∼3월)에 처음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 LG화학은 1∼5월 누적 기준으로도 시장 점유율 24.2%(사용량 7.8GWh)를 기록하며 1위를 지켰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LG화학은 CATL, 파나소닉, BYD에 이은 4위였다. LG화학만이 아니다. 삼성SDI는 1∼5월에 시장 점유율을 6.4%(사용량 2.1GWh)까지 늘리며 4위로 올라섰고, SK이노베이션은 점유율 4.1%(사용량 1.3GWh)로 7위까지 뛰었다.
자료: SNE리서치
○ 한국 배터리 산업 ‘제2의 반도체’ 되나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이름은 대부분 ‘○○모터스’다.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엔진에 각 기업의 기술력이 집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기술력의 핵심은 엔진이 아닌 배터리가 됐다. 더 빠르게 충전해 더 오랜 시간, 더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더 안전한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한다는 뜻이다.해외시장 조사업체인 IHS마켓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올해 38조8000억 원에서 2023년 94조5000억 원, 2025년에는 18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약 170조 원으로 예상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이유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K배터리를 이끄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눈에 띄는 성장세의 비결은 연구개발(R&D)에 대한 선제적 투자에 있다. 미래차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보고 수십 년간 반 발 앞서 투자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분산된 안정된 글로벌 생산 체계가 구축된 점도 장점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한 점도 중국과 일본을 앞선 요인이 됐다.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지원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CATL은 중국 내수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코로나19로 타격이 컸다. 일본 파나소닉은 미국 테슬라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 ‘K배터리’ 이끄는 LG 삼성 SK
국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맏형’ 격인 LG화학은 매년 1조 원이 넘는 R&D 투자 비용의 30% 이상을 배터리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배터리 R&D에 1조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관련 특허만 1만7000여 건을 쌓아뒀다. 2024년까지 배터리 사업으로만 매출 30조 원 이상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다. 전 세계 배터리 업체 중 유일하게 한국, 미국, 유럽, 중국 등 대륙별로 배터리 생산 4각 체제를 완성해 주요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삼성SDI는 차별화 기술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중국, 유럽에서 배터리 셀 공장을 운영 중이고 미국, 오스트리아에는 배터리 팩 공장을 두고 있다. 주요 고객사인 BMW그룹과 전기차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폭스바겐, 아우디, 크라이슬러, 볼보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삼성SDI는 내년에 1회 충전에 60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를 출시할 계획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소형 배터리 1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며 “1회 충전에 최대 600km 주행 가능한 배터리뿐 아니라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일 dong@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