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이후 ‘핵보유국’ 첫 언급
北 노병대회 등장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휴전 67주년인 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노병대회에서 오른손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라며 핵 무력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 뒤에 김일성 초상화가 보인다. 노동신문 뉴스1
○ 한미에 “비핵화 협상 불가” 강력 메시지
김 위원장은 이날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 “(북한은) 온갖 압박과 도전들을 강인하게 이겨내며 핵보유국으로 자기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며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란 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2018년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후 공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핵전쟁 억제력’이 가장 최근 언급된 건 김 위원장이 주재한 올 5월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였으나, 이 자리에서도 ‘핵보유국’ 표현은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의 경직된 태도가 이어지며 11월 미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계속 낮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점차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북한의 압박이 역으로 트럼프의 ‘도박꾼 기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국’ 언급을 보고 ‘무언가라도 빨리 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급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와 즉흥적 성향을 고려해 일종의 ‘미끼’를 던졌다”고 해석했다.
한국 입장에선 북한의 ‘핵보유국’ 언급은 그러지 않아도 먹구름에 싸인 남북 관계에 추가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추후 협상 목적이 핵보유국 간의 군축 협상이라는 점을 시사하며 ‘남쪽은 빠지라’는 메시지를 재차 던졌다는 평가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이 이번 연설에서 “당분간 대남관계에서 물러섬이 없을 것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 북, 핵탄두 최대 100여 개 추정
2018년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력 증강 시간을 벌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 정보 당국은 올해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이 최대 1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해 1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가 30∼40개로 추정되며 이는 지난해보다 약 10개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은 2018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핵무기 10개를 제조할 수 있는 50여 kg, 고농축우라늄(HEU)은 ‘상당량’ 보유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미 전략자산이 발진하는 괌이나 주일 미군기지 등을 타격권에 둔 미사일 전력을 완성했거나 그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북극성-3형 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전력화 및 양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도발을 재개한다면 SLBM 시험발사를 대미 ‘자위적 핵 억제력’의 최우선 완성 이벤트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기재 record@donga.com·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