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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교수의 新국부론] 대변동의 시대: 수도권 집중화 깨뜨려야 코리아호 순항 가능

입력 | 2020-07-30 03:00:00


《 극초저출산과 청년실업, 수도권 집중화와 부동산 문제 등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자도 있다.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에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행정수도 이전’으로는 30년 후 소멸이 속출할 지방자치단체를 살릴 수 없고, 집값을 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교육혁명에 답이 있다.

동아일보는 대학혁신과 교육혁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젠다를 선도해 온 전호환 부산대 교수 (전 부산대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의 기고를 10회 연재한다. 전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신국부론’을 중심으로 △수도이전과 교육균형 발전론 △도시국가론 △대학 주도 소득성장론을 다룰 예정이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라는 생명체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이고, 30억 년 동안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진화해 왔고 자연선택은 무작위적이 아닌 차등적인 유전자의 번식이다”는 게 책의 요지다. 그러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학습을 통해 본능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 대목에서 팬데믹의 끝이 보이는 것도 같다.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다. 인간이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서 살아남거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멸종시키거나. 인류가 사라진 후자의 세상은 논할 필요가 없다. 전자의 경우는 자연적으로 혹은 개발된 백신의 도움으로 면역력을 얻은 사람이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 살아남고 변화된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2011년 ‘사피엔스’라는 책을 출간하여 단번에 세계 최고 지성인의 반열에 올라선 유발 하라리도 도킨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인류의 빅 히스토리를 다룬 이 책에서 저자는 “다수가 협력할 수 있는 능력과 상호주관적 실재(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사피엔스가 지구상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라고 역설한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에 대한 사회진화론적 통찰
하라리 등 세계적 석학들은 코로나19 이후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붕괴’의 저자인 컬럼비아대 애덤 투즈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1, 2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맞먹는 대격변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는 스페인 독감 팬데믹, 세계 대공황, 독일 파시즘과 소련 볼셰비즘의 등장 등 문명사적 큰 전환이 된 사건이 세계 질서를 바꿔 놓았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경제 선진국들이 코로나19 재난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 모두 1위의 불명예를 안은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의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역시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폐쇄적 태도로 국가의 신뢰도를 크게 잃었다. 그야말로 대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하라리에게 ‘사피엔스’ 책을 쓰게 동기 부여를 했다는 명저 ‘총·균·쇠’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최근 발간한 ‘대변동’이란 책에서 ‘개인과 국가의 생존은 ‘위기· 선택 ·변화’에 달려있다’고 갈파한다. 개인이나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게 평가’해 ‘선택적 변화’를 성공시킬 때 살아남는다는 사회진화론적 통찰론이다.

정직한 평가: 수도권 집중화가 부른 극초저출산이 가져올 코리아호의 침몰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대변동의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적 변화’를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평가받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우수한 건강보험제도 등에 힘입어 코로나19 팬데믹에 잘 대처하는 모범국가로 인정받으며 코리아 브랜드 가치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한국)호의 침몰을 예고하는 시그널도 있다. 2019년 출생아 수는 30만3000여 명으로 국가 지속을 위한 출산 임계선에 닿아 있다. 코로나 여파로 올해는 출생아가 26만 여 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향후 30년 내 89곳이 사라진다는 보고서(2018년 한국고용정보원)도 있다. ‘아이 없는 한국’의 미래는 그 어떤 상황을 대입하더라도 밝을 수 없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집중은 한국호 침몰의 구체적 증상이다. 12%의 국토 면적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토지 자산은 2018년 말 기준 약 4678조 원에 육박해 전국 토지자산의 56.9%나 된다. 2019년에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많은 지방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수년 내 문을 닫고, 지역 대학 10개 중 9개는 10년 내 사라질 것이다. 현재의 최대 위기는 극초저출산이고, 그 원인은 수도권 집중현상이 제공하고 있다.


어떤 선택적 변화가 필요한가
수도권 땅값과 집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당은 ‘수도 이전’이라는 회심의 전략을 꺼내 들었다. ‘천도(遷都)’가 수도권 땅값과 집값 폭등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출산율 증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는 실행 가능한 대책이 우선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4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특히 상위권의 대학이 모두 서울에 있다. 젊은이들의 ‘인(In) 서울’ 열풍은 꺾일 줄 모른다. 지방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서울은 갈수록 비대해진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주거가 불안한 상태에서 자녀 출산을 기대할 수 없다.

저출산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역 균형발전이다. 지방에 살아도 직장이 있고, 대학, 의료, 예술 문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복잡한 수도권에 살 필요가 없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구가 분포하면 집값이 잡히고 생활비용도 저렴해져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지역 균형발전의 선행 필수요건은 교육균형발전이다. 지방에 명문대학이 골고루 흩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1776년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인 자유시장주의에 기반한 ‘국부론(國富論)’을 발표했다. 그는 개인적 수익을 내려는 이기적 인간의 탐욕이 공동체 부의 기반이고 이러한 이기주의가 이타주의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제적 교리가 수도권 집중화와 부의 편중화를 초래했다. 땅값과 집값에 묶어 둔 자본은 부가 아니다. 소득증대와 고용창출을 위한 지식과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공동체의 부가 된다.

국가 경쟁력에 비해 서울대의 평가가 뒤처진다는 이유로 서울대 폐지론도 다시 꿈틀거린다. 서울대의 재정은 세계적 수준 대학 재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극초저출산과 수도권 집중에 따른 코리아호의 침몰은 충분한 교육재정확충과 지역에 골고루 세계적 대학을 육성하는‘교육혁명’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침몰해가는 한국호를 살리는 신(新)국부론이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 (전 부산대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