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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몰카 전수조사[횡설수설/이진구]

입력 | 2020-07-30 03:00:00


‘몰카(몰래카메라)’를 제대로 찾으려면 건물의 모든 전원을 끈 뒤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몰카탐지기는 촬영한 영상을 저장하거나 송신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를 탐지하는 방식이 가장 많은데, 비데나 전선에 흐르는 전류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중이용 시설물의 모든 전원을 끄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탐지기 반응을 보고, 의심스러운 곳을 점검하는데 천장이나 벽 틈은 파손 시 배상 문제가 있어 웬만큼 확실하지 않으면 뜯어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2018년 8월 ‘몰카 보안관’을 발족한 서울 서초구는 지금까지 누적 9300여 개 건물, 8만6000개의 화장실을 점검했지만 실제 몰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몰카로 사용되는 지름 1mm 초소형카메라의 작동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숨기는 곳은 첩보영화가 무색하게 진화하고 있다. 담뱃갑 단추 라이터 등은 이제 ‘라떼’ 몰카 취급을 받는 고전에 해당한다. 실제 물이 담긴 생수병(500mL) 카메라도 나왔는데 여분의 렌즈 가리기용 상표 스티커와 미개봉된 뚜껑도 준다. 무선공유기 화재경보기 인형 등 종류도 갖가지인데, 선물 받은 곰인형이 밤마다 눈을 돌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몰카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경남 김해와 창녕에서 교사가 학교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이 적발된 데 따른 조치다. 각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이달 16∼31일 긴급 점검하고, 발견되면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점검 날짜가 공개됐는데 설치한 몰카를 그냥 놔둘 범인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경남교육청은 2018년부터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 대여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비 대여 학교와 대여 시기가 공개된 공문을 내려보낸다고 한다. 몰카범이 교직원이라면 자신의 학교가 언제 점검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다.

▷학교, 특히 초등학교가 몰카 전수 점검의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다. 숙박업소나 상업시설 화장실처럼 누구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본 데다, 학생들이 받을 정서적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범죄의 장소로 걱정되고, 아이들이 ‘혹시 우리 선생님이나 교직원이…’라는 의심을 잠깐이라도 하게 되는 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그런 씁쓸한 현실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안마저 몰카 위험지대가 된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이왕 하려면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점검으로는 몰카범은 못 잡고 불신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